2025년 2월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1시간 30분의 장시간 통화를 가진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히, 전쟁의 당사국이자 깊은 이해관계자인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배제된 채 미-러 담판 성격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종전 협상의 틀은 기존 서방의 정책 기조와는 크게 다르다.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전쟁 이후 상실된 우크라이나 영토 회복은 비현실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푸틴 대통령이 주장하던 러시아 입장을 인정해 버린 것이다. 거기다 3년 동안 함께 싸웠던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과는 일절 상의와 조율도 없이 종전을 밀어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외견상으로 보면 갑자기 진영 대결 전선이 허물어지고 적과 우방이 뒤바뀌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러 전쟁을 주도하던 미국이 러시아에 접근하고, 그간 한편으로 싸웠던 서방 동맹국들과는 거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3주년을 맞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미국은 러시아, 북한, 이란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이 서방 진영에서 이탈해 과거 악의 축으로 비난했던 그룹과 보조를 맞춘 모양새가 연출된 것이다.
과연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종전 협상은 어떻게 될까? 미국의 지원이 끊겨도 우크라이나는 계속 싸울 것인지, 유럽이 미국 없는 전쟁을 홀로 감당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을 이어갈 것인지가 우선 관심이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 제공 문제다. 유럽 국가들이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병한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 유럽 국가들 내부에 이견이 조율된 상태는 아니다. 종전 전망보다 더 큰 틀의 질문도 제기되고 있다. 종전이 성사되어 미-러 관계가 개선될 경우 유라시아 지정학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현실주의 이론가들이 지적해 왔듯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속화돼 온 중-러 밀착이 이완되고 미국이 중국 견제에 집중할 수 있는 지정학적 환경이 만들어질 것인가? 나토의 미래도 초미의 관심사다. 미국에 대한 의존 관성에서 깨어나고 있는 유럽이 드디어 진정한 독립을 이룰 만큼 재무장과 자체 결속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집단 방위에 대한 헌신이 생명인 나토는 이 과정에서 어떤 위상을 갖게 될 것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비단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찍이 나토와 인도·태평양의 연계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 속에 한국, 일본, 호주 등 AP4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이어왔다. 유럽발 지정학 구도의 변화는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유럽의 대중국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며, 전쟁 이후 급속하게 가까워진 북-러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울러 서방의 일원으로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대러 제재에 동참해 온 한국의 향후 정책 기조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짚어야 할 질문과 고민해야 할 정책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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