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정부는 작년 10월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발간하여 그간 미국 외교 정책의 총론과 향후 전략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은 탈냉전 30년이 명백히 종식을 고했고 앞으로 10년이 세계 질서와 미국의 이익을 규정할 결정적 10년이라고 논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 외교 전략의 전체 모습에 영향을 미칠 핵심적인 위협(pacing threat)이라고 정의하는 동시에, 러시아가 당면한 단기적인 위협이라고 논하고 있다. 미국이 정의하고 있는 세계 질서의 시기 구분은 다른 국가들에게도 많은 함의를 가진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잠재되어 있던 구조적 흐름과 이를 극명히 보여 주는 사건이 결합될 때 분기점이 만들어진다. 2022년은 그러한 점에서 국제정치상 중요한 한 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규칙 기반 질서가 다른 강대국에 의해 정면으로 도전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미국의 힘이 약화되어 가고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하게는 탈냉전기 미국이 건설하고 주도해 온 국제질서의 여러 문제점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응집되어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국제법을 전쟁으로 위반하고 일으킨 명백한 불법적 전쟁이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해야 할 점은 1990년대 이래 미국이 서유럽, 동유럽, 그리고 러시아의 안보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지속가능한 안보 질서를 만드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임박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확히 예상하고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도 미국의 탈냉전기 유럽안보정책은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미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중국의 홍콩 병합, 미얀마의 군사독재 강화 등 여러 사안에서 미국이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은 미국이 세계 질서 수호에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표출했다. 미국의 힘이 약화되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국제정치 사안이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져 하나의 강대국이 패권의 역할, 혹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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