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 NATO 정상회의 기조연설,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 9월 20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자유”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설파해 왔다. 여기서 자유는 개인의 자유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공동체나 국가를 화두로 잡아 온 이전 대통령들의 담론과 상당한 차이점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한국이 민주주의외교에 나서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불러 왔다. 이를 반영하듯, 백악관은 한국 정부가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도-태평양 지역회의를 주최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3월 29일 온라인으로 열리는 글로벌 정상회의에 이어 30일에는 서울서 인태지역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새 정부가 ‘가치외교(value diplomacy)’ 또는 ‘가치기반 외교(values-based diplomacy)’를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삼는다는 것은 여러 통로로 알려져 왔지만 구체적 계획이나 성과는 무엇인가라는 의문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인태지역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는 가치외교의 첫 주요 성과로서 환영할 일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정부가 가치외교를 이행할 구체적 활동 방안들을 마련하고 실행하게 된다면, 현 정부의 주요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가치외교는 그 추상성과 모호성으로 말미암아 방어적 위치에 있다. 단순히 말하자면, 가치외교란 가치를 외교적 판단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외교라고 정의할 수 있겠는데, 다음과 같은 우려가 종종 따라다닌다. 외교는 국가이익을 실현하는 수단이므로 가치보다는 손익 계산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가치는 이익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나중에 무엇이 가치인가라는 문제를 더 들여다보면 알 수 있듯이, 가치(value)는 이익(interest)에 대치되는 개념은 아니다. 가치는 이상과 효용 모두 포함하므로, 인권가치와 경제가치가 충돌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가치와 이익이 충돌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가치의 영역을 이념적 ·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소중한 것으로만 제한한다 해도, 이러한 가치가 현실 정치나 외교에서 이해관계와 함께 작동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세계가 에너지와 식량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국제사회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지지하는 것은 영토 주권과 민주주의 보호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관련한 국제법과 규범이 지켜지는 것이 자신들의 안전에도 이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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