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여러 계기를 통해 ‘신냉전’과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언급하며 자신과 북한의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을 가감 없이 드러내 국내외 관찰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 이 같은 북한의 국제정세 인식은 미국 중심의 일극적 국제질서의 이완과 해체에 대한 그들의 강한 기대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북한이 국제질서의 성격을 신냉전으로 규정하기 시작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G2’라는 개념의 보편적인 유통의 계기가 됐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이다. 동 사안을 통해 미중 간 국력의 경향적 저하·상승의 흐름이 축적돼 기존 국제질서의 경로의존성에 대한 강한 의문과 팽팽한 긴장이 초래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중국이 소위 미중 전략경쟁을 본격화하면서 북한의 이 같은 인식은 한층 강화됐다. 실제로 통상 부문에서 시작돼 정치·안보·가치·규범 등 전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양국 간 경쟁은 전 세계적 범위에서 소위 진영화의 경향성을 빠르게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신냉전 수사의 근저에는 냉전기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적대적 진영(bloc) 간 경쟁과 대립의 장기 지속에 대한 상황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이와 함께, 북한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전후로 국제질서의 다극화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들이 미국과 중국으로 대변되는 두 개의 강력한 ‘힘(영향력)의 중심’ 이외에 또 다른 중심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 같다. 사실 탈냉전기 동안 소위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은 제국주의 시대의 낡고 정당하지 않은 개념으로 인식됐고, 국제무대에서 그 사용이 사실상 금기시됐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최근 엠마 애시포드(Emma Ashford)가 적절하게 지적했듯 어쩌면 본질적으로 미국의 전 세계적 범위의 영향력 우위와 경쟁 세력권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사실적으로 보여주듯, 오늘날 세계는 중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국경 주변 지역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세력권을 재구성하고 미국과 힘의 한계를 놓고 경쟁하는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즉, 북한이 최근 국제질서의 다극화에 대한 언술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경향성을 반영하려 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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