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은 1991년 격동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 속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에 대비하려는 국가적 필요와 국민의 염원을 안고 설립됐다. 그때는 한민족과 한반도 질서를 옥죄고 있던 냉전이 해체되고 자유주의 질서가 대세를 이루었던 시기이다. 세계가 자유 민주주의로 수렴하고 개방과 협력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는 희망이 넘쳐났다. 남북한도 대화를 시작했고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탈냉전의 시대조류에 동참하는 듯했다. 남북한은 한반도를 비핵화하고 상호 체제를 인정하며 불가침하고 교류협력을 통해 평화와 통일을 지향할 것을 합의했다.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통해 민족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제도의 통일을 이루고자 했던 우리의 구상이 실현될 듯 보였다.
역사의 진전은 일직선으로 진행되지는 않은 것 같다. 통일연구원의 34년 역사는 남북관계가 화해와 대립, 평화와 긴장이라는 우여곡절 속에 있었다. 세계사도 경계 없는 협력이 진행되는가 하면 냉전시대보다도 더 많은 충돌과 전쟁, 테러가 일어나 인류사회에 큰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양극적 세계질서가 일극적 세계질서로 변했다가 다시 강대국 간 전략적 체제 경쟁, 소위 신냉전으로 들어갔다. 북한은 경제난으로 수백만이 굶주림으로 죽어나가고 수만 명이 탈북하는 등 곧 망할 것 같았으나 부자 세습과 철저한 고립, 선군정치의 폭압으로 버티면서 한편에서 핵 개발에 성공했다. 이제 핵과 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민들의 기본적 생활도 보장할 수 없는 체제 위기는 계속되고 있어 북한 정권은 남한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패배했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남북한이 동족이 아니며 통일할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편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 2국가 관계이고 핵무기로 남한을 파괴하여 영토편입하겠다는 무력에 의한 흡수통일 노선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도 분단이 오래되고 세대가 바뀌면서 통일 문제를 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일어나고 있으며 심지어는 통일이 불가능하다거나 통일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마음 속에서 통일을 제거하여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파괴하고자 하는 반민족적 도전이 노골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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