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인식은 ‘두려움’이었다. 냉전과 함께 시작된 미소 군비경쟁은 핵 시대의 개막을 알렸고, 핵무기라는 궁극의 무기가 가진 엄청난 파괴력은 양국 모두에게 공멸(攻滅)에 대한 우려를 가져다주었다. 바로 이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미소의 핵 군비경쟁하에서 전쟁을 막아준 주요한 심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공포와 함께 존재한 심리에 있어 미국과 소련은 차이를 보였다. 냉전 당시 소련인들이 미국에 느꼈던 감정은 ‘공포’와 ‘존경’(respect)이 뒤섞인 것이었고, 미국인들의 대(對)소련 인식은 ‘공포’와 ‘경멸’(contempt)을 담고 있었다.1 구(舊)소련 해체와 이어진 시장화 조류, 그리고 1980년대 후반을 특징지었던 동유럽권의 자유화·민주화 저변에는 이러한 존경이 자리잡고 있었을 수 있다.
이처럼 한 국가의 다른 국가에 대한 태도(attitude)나 행태(behavior), 그리고 정책에는 상대편 국가에 대한 인식(perception)이나 정서(emotion)가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어떤 국가가 특정 국가를 적대시한다고 하더라도 그 배경에는 두려움(fear), 증오(anger), 짜증(irritation) 등 다양한 심리가 존재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정서나 심리가 상대 국가에 대한 정책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두려움을 배경으로 한 적대감이라면 이는 상대방의 안보딜레마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적용될 수 있다. 반대로, 증오가 자리잡고 있다면 군사적 응징이나 전쟁으로 발전될 위험도 있다. 따라서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단선적 인식 차원을 넘어 그 심리적 저변을 탐구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국민의 북한에 대한 인식 저변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불안을 해소하거나, 국민 다수가 실제로 공감하거나, 그로 인해 광범위한 정책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북 정책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이 북한에 느끼는 심리의 저변을 탐색하기 위한 조사 연구는 그 동안 빈약했던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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