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출범한 국민주권 정부는 이미 대선 공약을 통해 ‘남북관계 복원 및 화해·협력으로의 전환’을 추진할 것을 천명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정책에 대한 우리의 기존 사고를 지배해온 탈냉전기적 상상력 또는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극복이 필요하다. 탈냉전기 진보와 보수 진영이 각각 제시한 한반도 평화 구상들은 결국 민주주의 정체나 시장의 확산이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공통의 전제 혹은 기대에 입각해 있었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은 가까운 시일 내에 시장화와 민주화의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며,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공동의 인식 틀이 작동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 탈냉전기 전 지구적인 민주주의와 시장의 확산 추세와 정확히 조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탈냉전 시대를 지배했던 자유민주주의 승리와 민주주의의 전 지구적 확산 흐름은 이미 중단되었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자유무역 체제가 균열을 일으키면서 보호주의와 민족주의 흐름이 강화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민주주의 후퇴와 극우 정치의 부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다. 오늘날의 환경에 부응하는 새로운 대북정책 패러다임은 실질적 핵보유국인 북한과의 장기 공존, 상당한 기간 동안의 남북 경쟁이 지속되는 상황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북 사이의 경제적 교류나 북한의 자유화를 통해서 북한 체제가 가까운 시간 내에 급속히 변화할 수 있다는 혹은 그러한 변화를 외부에서 강제할 수 있다는 식의 탈냉전기적 대북정책 인식 틀과의 결별이 무엇보다 먼저 필요하다. 탈냉전기 종식 이후 그간 억제되어 온 지정학적 갈등들이 고조되면서 곳곳에서 다시 전쟁의 포화가 재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재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는 남북 간의 우발적인 무력 충돌 상황을 방지하고 그간 격화된 남북간 긴장을 완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새 정부는 이러한 긴장 완화 조치들을 출발점으로 삼고 오늘날의 시대 상황과 북한 정세에 부합하는 새로운 대북정책 패러다임에 기초하여 장기적인 남북 평화공존을 위한 조치들을 차분하게 취해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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