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중심의 전통적인 안보 개념에서 보다 확장된 안보 연구의 기틀을 마련한 코펜하겐 학파의 안보화(securitization) 이론에서는 안보 위기를 객관적으로 실제하는 어떤 조건이기 보다는 현존하거나 잠재하는 위협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구성하는 정치적 담론으로 정의한다. 현대사회에서의 안보 문제는 안보 주체가 안보 위기를 인식하고 쟁점화하는 담론들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의미이다.
안보의 문제가 실재보다는 인식과 담론의 문제라는 점은 실제로 현대 사회에 안보 위기를 가져오고 있는 문제들이 과거와는 달리 탈인간화, 탈물질화되거나 국가의 관리 영역을 뛰어넘는 국경초월적 성격을 지니게 된 것과도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위기에 대응하고 관리해 왔던 물질적이고 국가중심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야만 해결과 대응이 가능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구조적으로 그러한 대응 체제를 마련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계를 자각하고 미래 사회와 국제관계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과정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위기 요인으로 인식되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은 곧 우리 국가나 국제사회가 대비해야 하는 문제영역들에 대한 미래 전략에 대한 논의와 직결되어 있다.
WEF의 <세계위기보고서 (Global Risks Report)>는 전세계 지식인, 전문가, 그리고 정책결정자들의 여론조사(Global Risks Perception Survey)를 통해서 향후 10년을 감안할 때 예상되는 국제적 위기 요인들을 선정하여 담론화 하고 있다. 개별 국가나 국제연합(UN)과 같은 국가를 대표하는 국제기구가 아닌 비영리 국제민간기관에서 주관하는 범국제적 위기의 예측인 만큼, 국가이익과 같은 정치적 관점이 아닌 인류의 문명적 보존과 인간안보 측면에서의 위기 관리 및 글로벌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알리는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한국의 입장에서는 확실한 중견국가로의 도약을 바라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와 보편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국제적 위기에 함께 대응하고 협력하기 위한 담론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그 가치와 국제협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미래 위기 인식에 나타난 쟁점 이슈들과 담론들이 우리의 외교 아젠다 설계에 반영되어야만 한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