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2025년 등장하는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와 북한 간의 소위 핵 군축(nuclear disarmament) 협상 가능성을 다룬다. 북핵 문제는 30년간 해결되지 못한 난제 중 난제이다. 특히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장기 교착상태에 진입함으로써 외교를 통한 비핵화 노력은 지지부진하다. 북한은 어떠한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핵 능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고, 미국은 강력한 군사적 억제와 경제 제재로 대응하고 있다. 미북 양측이 상대의 전략에 굴복할 가능성이 상당히 낮고 자신의 목표를 전환할 의사도 없는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전망은 어둡다.
하지만 미북 간에 협상과 타협의 가능성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확보와 경제난 타개를 위해 미국과의 관계 정립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워싱턴과 뉴욕에 대한 핵 타격 위협을 높이는 것을 언제까지 지켜만 볼 수 없는 처지이다. 양측의 이러한 동기는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화와 타협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최근 미국 일부 관계자들이 핵 군비통제(nuclear arms control) 접근 모색, 중간단계(interim step)로서의 협상 필요, 대북 제재와 미 본토 핵 위협의 교환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2025년 이후 새로운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의 변화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내부의 이러한 대안적 주장들은 그간 북핵을 대화로 해결하고자 하는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본 입장과 배치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칫 북한과의 신중하지 못한 협상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북핵 위협은 감소나 제거되지 않는 가운데 북한 비핵화 공조 체제만 훼손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한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묵인받음으로써 핵 능력 일부라도 영구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핵 군축에 나선다면, 미북 협상이 오히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되돌리기 힘든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도전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본 연구는 향후 미국 신행정부와 북한의 핵군축 협상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가능성, 이유, 특징, 도전요인을 식별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일반적 원칙과 시나리오에 따른 맞춤 고려 사항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는 결론적으로 2025년 미국 신행정부와 북한 간 군축 혹은 군비통제 협상이 시작될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평가한다. 설사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미북 양측이 이를 전략적이기보다 정치적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타협의 과정까지 이를 가능성도 높지 않을 것이다.
협상 개시와 타협에 비관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이 원하는 군축은 자신을 핵확산방지조약(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NPT) 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고, 미국의 군비통제적 접근은 북한을 NPT 상 핵 비보유국으로 남기겠다는 것이다. 목표가 상이하므로 타협의 여지가 극히 낮다. 둘째, 설사 군비통제 방식으로 협상하더라도 타협 가능성이 높다고 단언할 수 없는데, 북한의 비핵화 조건이 ‘전세계의 비핵화’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중임을 미국은 잘 알고 있다. 셋째, 미국은 현재 중국‧러시아와의 군비경쟁에 전념해 있으며, 혹 군비통제를 추진하더라도 그 대상은 북한이 아닌 이들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넷째, 미국 신행정부에서 북핵 문제의 우선순위는 과거보다 낮을 것이고, 북한은 일단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핵 능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가능성도 크다. 마지막으로 2019년 양측 타협의 실패로 더욱 악화된 상호 간 고질적인 불신도 타협의 과정에 장애물로 작동할 것이다.
비록 미북 간 협상과 타협의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이를 방관할 수만은 없다. 미북 협상과 타협 과정에서 중요한 도전적 상황이 제기될 것이며 혹시나 타협에 성공하는 경우 이를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 정부가 견지해야 할 대응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미북협상의 공식 명칭, 형식, 내용에서 '군축'을 배제, ② 대화를 통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견지, ③ 先 한미공조, 後 미북대화, ④ 우리 정부의 「담대한 구상」과의 적극적 연계 등 4가지이다. 아울러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핵협의그룹(NCG)은 미북 협상의 의제에서 배제해야만 한다. 북한의 기만에 대비하고 우리의 안보 근간을 훼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북 간 협상에 대한 과민 반응이나 과잉 대응을 할 필요는 없다. 도전적 상황을 잘 관리하면 우리에게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만에 하나 미북 간 협상이 타협과 이행 단계로 진행되면 우리가 미북 협상에 전략적으로 관여해야 한다. 우리의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약속을 우리가 방관하거나 미국과의 사전 조율에만 의지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앞서 4가지 원칙에 따라 미북 간 협상을 북한 비핵화 협상으로 성격이 전환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담대한 구상’을 미북 협상과 연계해 북한을 비핵화 협상에 묶어 두고 실제 비핵화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을 주도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즉 미북 군축 협상을 한미북 3자 비핵화 협상으로 전환하려는 담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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