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당국은 남북관계와 관련된 기존 조직들을 폐지하는 것을 넘어서 ‘삼천리’, ‘동족’ 등 남북이 하나의 민족임을 상징하는 표현들 자체를 모두 삭제하고 있다. 대남 적대 선언과 통일 포기를 넘어 이제 민족 자체를 ‘분리’ 하려고 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 분단 이후 동독 당국은 체제 정당화 및 생존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민족(Nation) 개념의 변화를 시도했다. 1949년 정권 출범 이후 동독 당국은 하나의 독일 민족이 서독과 동독이라는 두 개의 국가를 건설하였으며, 민족사적 정통성은 동독 편에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이 추진되면서 수세에 처한 동독은 1971년에 이르러 기존의 독일 민족 개념을 폐기하고 ‘두 민족론’으로 선회하게 된다. 독일 민족의 단일성을 부정함으로써 동독 체제의 독자적 주권성을 인정받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에 뿌리를 둔 독일 민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이러한 정치적 시도는 동독 주민들의 민족 감정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의 동질성 자체를 부정하려는 북한의 시도는 그간 주체의 민족관을 내세우며 ‘혈연 민족’ 개념을 강조해온 북한 내부의 민족 담론 자체에 많은 혼선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민족 독립을 위한 항일 무장투쟁에서 북한 체제의 기원과 정당성을 확보해 온 북한 당국이 기존의 민족 개념을 소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 민족의 동질성과 통일의 당위성을 부정하는 최근 북한의 두 국가론과 대남정책 전환은 과거 동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서독이 동독의 민족 분리 시도에도 불구하고 독일 민족의 단일성과 통일 지향성을 계속 유지했던 바와 같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우리의 평화 통일 정책 구상도 지속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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