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열려 양 국민들이 뛰어나와 환호하고 1990년 통일조약을 맺어 46년간 분단되었던 동서독이 하나로 합해진 이후 3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베를린 장벽 위에서 기뻐하고 열광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이 아직 전 세계인들의 기억에 선한데, 통일 이후에는 사회적 갈등이 불거져 나왔다. 더불어 통일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갔는지, 누가 통일의 수레바퀴 아래 깔려 들어간 희생자였는지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구 서독의 흡수통일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구 동독 주민들이 우선적으로 희생자로 거론되었고 이들의 상실감과 박탈감, 불안, 불만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많이 행해졌다. 또한 젠더 관점에서 구동독의 여성집단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행해졌다. 과거에 거의 완전 고용 상태에 있었던 여성들이 통일 이후 실업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놓였음이 많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또 다른 희생자 사회그룹이 있었으니 바로 외국인과 이주민들이다.
통일 이후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많은 요소 중 ‘민족’이 전면에 나서면서 이 민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외국인으로, 이방인으로 재분류되어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되었다. 또한 통일 이후 10여 년간 이주민, 외국인에 대한 독일인의 불만이 급증하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 벽이 튀르키예인들의 머리를 덮쳤다”라는 말에서 보듯, 구 서독과 구 동독의 가장 큰 이주 노동자군을 형성했던 튀르키예계 시민들과 베트남계 시민들에 대한 테러가 폭행과 방화의 형태로 극렬하게 자행되었다. 우리는 통일 독일의 이러한 갈등과 폭력 사태를 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튀르키예인들과 베트남인들은 어떤 경로로 독일에 가서 살고 있었는가? 이들에게 행해진 폭력과 테러는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가? 이러한 테러와 폭력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고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어떻게 이 사태를 분석할 수 있으며 또한 어떻게 미래에 방지할 수 있을까? 당사자들은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당시 독일 내에 있었던 많은 이주 작가들은 통일 이후에 자신들이 겪었던 새로운 형태의 차별과 폭력을 문학이라는 각 개인들의 구체적이고 압축적이고 생생한 삶의 형식으로 재현해 내었다. 아직 분단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도 미래에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가정할 때 동일한 갈등과 문제를 겪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수 없고 단일민족 의식이 유독 강한 상황에서 더욱 우려가 되고 있다. 독일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민족의 통일이 불러올 다문화사회와의 갈등은 충분히 미리 예견해 볼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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