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정권은 1950년대에 소비에트 체제를 그대로 이식해서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사회주의 제도를 기획했으며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기본골격을 형성했다. 김일성은 1959년 반종파 투쟁을 마무리하면서 김일성 단일지도체제를 확립했는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큰 틀은 거시적인 측면에서 김정일, 김정은 정권을 거치면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김정일은 집권 전인 1970년대부터 온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당의 최고 강령으로 내세웠으며 고난의 행군(1995-1999) 시기에는 선군정치를 내세워 사회주의를 지켰다. 뒤이은 김정은 정권은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웠다.
70여 년간 세습적 통치 체제를 이루어낸 북한을 바라보는 모델들은 유교적 가족국가, 유격대 국가론 및 정규군 국가론, 극장국가론 등 다양하다. 이 모델들은 수령제를 중심으로 한 하향식(top-down) 권력의 시각에서 북한체제를 바라보고 분석했는데 특히 탈냉전과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에도 체제를 공고히 한 북한의 거시권력(macro-power)을 분석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부터 아래로부터의(bottom-up) 미시적 변화의 모습들이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혹은 북한 매체의 행간에 조금씩 그러나 점차 분명하게 감지되고 있다. 장마당 세대 탈북민들은 자신을 먹여살린 것은 장마당이라고 하면서 요즘 북한 주민들은 노동당보다 장마당을 더 신뢰한다고 말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4월 당세포비서대회에서 “청년세대의 사상정신 상태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다”며 ‘인간개조론’까지 거론했다.
이러한 미시적 사회 변화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예상치 못한 역사적 사건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고난의 행군으로 인해 북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큰 원동력인 국가 배급 능력이 약화되면서 사회 곳곳의 일상 속에 모세혈관처럼 뻗어 내려가 시간, 공간, 제도의 그물망을 통해 작동하던 북한의 미시권력(micro-power)은(거시권력이 아닌) 이완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사실상 배급제의 붕괴로 인해 북한의 자생적 자본주의의 모태인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시장경제로 진입하게 되었다. 코로나19 발발 이전까지는 북한 정부가 임대료를 받고 영업을 묵인하는 450여 개의 장마당을 포함해 4,000여 개의 장마당이 북한 경제활동인구를 계속해서 끌어들이고 있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약 25년이 흐르면서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과 세계관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른 미시적 사회 변화가 외부세계에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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