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조선후기 산수기행문예에 나타나는, ‘奇’의 추구
...그들의 門人들이 산수유람을 기록한 기행시문에서, 그리고 이들이 산수와 시문을 평가하는 글에서 ‘奇’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또한이들과 함께 어울려 유람산수를 그린 화가 鄭敾(1676-1759)의 산수화도 ‘奇’로 칭송을받곤 하였다. 중국을 보면, ‘奇’를 높은 가치로 승격시킨 문화가 明代 末期에 유례없이 나타났다. 다양한 대상물의 기이한 것들을 모은 선집들이 출간되었으며 시문의 문체, 서체, 회화,전각에 이르기까지 기이한 것을 즐기는 문화가 성행하였다. 산수의 奇景을 모아서 편찬한 서적들이 그 중에 하나였다. 명대 산수관에 개입된 奇의 가치화는 山水遊覽과 山水遊記, 그리고 山水畵 및 版畵圖에서 구현되었고, 이들은 조선으로 들어와 인기를...
[학술논문] 전쟁의 정치적 변용 - 50~60년대 ‘항미원조’ 전쟁영화를 중심으로 -
이 논문에서는 1950~1960년대 ‘항미원조’ 전쟁영화를 대상으로 중국에서 한국전쟁이 재현되는 양상을 고찰함으로써 신중국의 냉전문화 구성 과정 및 그 균열지점을 짚어보았다. <상감령(上甘岭)>·<기습(奇袭)>·<영웅의 아들딸(英雄儿女)>은 항미원조 전쟁을 다룬 ‘17년 시기’의 대표적 작품으로서 제작년도(1956년, 1960년, 1964년)의 사회적 동향을 반영하여 각각 상이한 각도에서 대중정치를 작동시키는 방식을 보여준다. 동일한 전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기억하는 주체에 따라 전쟁의 양상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한국전쟁은 1차적 당사자인 남․북한 외에도 미국과 중국, UN 연합국이 참여한 국제전으로서 각국에서
[학술논문] 〈蛛山九曲〉題材 漢詩에 대한 一考察
蛛山九曲은 崔沄植이 지금 북한의 황해도 平山郡의 鳳山에 설정했다. 柳曦永(1794~1879)과 柳應斗(1847~1914)가 차운시를 지었다. 지금의 북한에서 출생한 사람이 구곡을 설정하고 북한 사람 2명이 화운시를 지은 사례는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다. 유희영가문은 柳麟錫(1842~1915)家門과 학연을 맺었다. 柳麟錫은 강원도 춘성군 남면 가정리에서 출생했다. 柳麟錫은 평안도 개천군 石溪地方에 가서 崇華契등 學契를 결성하여 崇華活動을 하였으며 지역 유림들에게 崇華意識을 고취앙양하기 위해 1902년「石溪九曲歌」를 지었다. 유인석은 기호학맥 李恒老(1792∼1868)의 제자이다. 유응두는 奇正鎭(1798~1879)과 宋秉璿(1836~1905)을 종유했다. 송병선은 宋時烈(1607~1689)의 9세손이다
[학술논문] 북한지역 고려 후기 금동불 연구 -중대형 금동불을 중심으로-
고려 후기는 13세기 몽고(蒙古)와의 치열한 전쟁이 끝나고 개경(開京)으로 환도한 1270년부터 고려가 멸망하는 1392년까지의 시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왕실은 물론 관료층과 민간의 적극적인 불사 후원과 사원경제의 발달, 공덕사상(功德思想)이 발전함에 따라 많은 불상이 조성되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불상은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사례를 포함하여 대략 140 여점 내외의 비교적 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특히 고려 후기는 고려 왕실과 원(元) 황실의 지속적인 혼인은 물론 원 라마교(喇嘛敎) 승려의 입국, 기황후(奇皇后)의 금강산 장안사(長安寺) 불사 후원과 같이 양국 간에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상은 이전 시기부터 계승된 전통적인 불상 양식이 주류를 형성한다는
[학술논문] 1960년대 중반 북한 경제위기 양상과 혁명전통의 유일성 확립: 개혁의 배격과 갑산파 숙청의 배경을 중심으로
1960년대 중반에 박금철을 제거한 숙청의 본질은 김일성으로의 고도의 권력 집중화를 위한것이었다. 한편, 박금철은 이 무렵에 나타난 경제적 무질서와 혼란, 경제 침체를 타개하기 위한방안으로 소련의 리베르만 방식을 부분적으로 시도하였다. 그러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서시범적으로 현장에 적용한 경제 조치는 뒤늦게 수정주의의 유포라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수정주의는 박금철과 갑산파를 제거하기 위한 정략적 명분으로 활용되었다. 혁명전통의 유일성에 찬동하지 않던 갑산파는 ‘반당수정주의자’ 규정되었다. 박금철에 대한 숙청은 중국의 류사오치(劉少奇)처럼 실용적인 경제 방안을 시도했다가 제거되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노선투쟁 혹은 권력투쟁이 본격화되기도전에 상황은 종결되었고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