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중국인민지원군 철군의 원인과 중·북 관계
... 북한이 중국인민지원군의 철군을 요구했던 주요 원인은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인한 중·소의 공동 내정간섭과 1956년 11월 소련군에 의한 헝가리 정권의 붕괴가 북한에 끼친 영향과 충격으로부터 기인하였다. 반면, 중국이 중국인민지원군의 철군을 결정했던 주된 까닭은 중·북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방지하여 동북아 국제정세의 안정을 추구했기 때문이었고, 또한 북한이 사회주의 진영을 이탈하거나 중·소와 대립하여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편, 철군문제를 둘러싼 중·북의 입장은 양국 간 상호신뢰가 견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중·북은 표면적인 우호·협력 관계와는 상반되게 서로를 불신하고...
[학술논문] 휴전후 북한주재 소련대사의 활동 - 소련의 영향력과 김일성권력의 자율성
6.25전쟁 휴전에서 1956년 ‘8월 종파사건’에 이르는 시점은 북한권력 역사상 최대의 정치적 변동을 겪었던 시기로 평가된다. 본 연구는 북한체제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소련의 역할을 주목하고, 이 역할을 북한 현지에서 수행한 소련대사들의 활동을 살펴보았다. 1953년 4월부터 1956년 6월까지 소련대사는 김일성을 비교적 자주 만나 면담을 하는 유일한 외국 대사였으며, 소련공민 출신 인사와의 면담을 통해 북한 내정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북한지도부와 정책을 조율하는 것이 소련대사의 주요 활동이었다. 휴전 이후 소련의 경제원조는 북한의 경제 복구에 절대적인 영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대사는 구체적인 경제문제에 개입하며 북한지도부에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학술논문] 제2의 해방: 북한 자주화와 1956- 57년의 중국-북한관계
1953년 7월 한국전쟁 정전 이후 중국의 외교정책은, 경제건설을 위한 우호적인 국제환경의 조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정책 또한 이러한 중국외교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전쟁의 재발방지’와 ‘조선반도의 안정적인 현상유지’는 중국의 대북정책의 목표였으며, 이의 실현을 위하여 중국은 북한 내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특히 1956년 9월, ‘8월 종파사건’에 대한 중소의 공동개입은, 중•조 간의 비대칭 관계의 상징이었다. 1956년 11월 초 김일성과 비슷한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던 헝가리에 대한 소련군의 무력개입과 뒤이은 헝가리 임레나지(Imre Nagy) 정권의 붕괴는, 김일성의 불안감을 극도로 자극하였다. 이에...
[학술논문] 북한 초기 역사학계의 고대사 인식체계와 구상
...기원 문제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그 결과 삼국시대 이전을 고대사회로, 삼국시대를 중세 봉건제 사회로 확정하게 된다. 이러한 고대사 인식 체계를 완성한 연구가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이다. 해방 직후의 북한 역사학계는 식민지시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활동했던 백남운과 리청원, 도유호 등이 주도했지만, 한국전쟁과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1956년 8월 종파사건)을 경과하면서 연구자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 이후 등장한 김석형과 박시형은 북한의 고대사와 전근대사 체계를 구축하는데, 그 결과 역사인식 체계는 사회주의적 애국주의에 기반한 민족주의 역사학의 강화로 귀결되었다. 결국 이러한 흐름은 국가와 권력에 철저하게 종속되는 역사학으로 현상하게 되고, 이후 본격적인 주체사관 등장의 토대를 제공하였다고 생각된다...
[학술논문] 2020년대에 1990년대 방식으로 북한을 이야기하다 -서평: 김재웅 『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푸른역사,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