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저항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는 무기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근대적 사상이 아니라 외세에 대한 적개심과 원한에서 비롯된 퇴행적 성격이 강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과 만주, 중국에는 무려 아홉 개의 공산주의 단체가 생겨났고, 지식인들은 공산주의를 이상향으로 바라보았다. 상해파, 이르쿠츠파, 고려공산당, 화요회, 북성회 같은 조직들이 속속 결성되며 사회 전반으로 번져갔다.
그러던 중, 전 세계의 판도를 바꾼 회담이 열렸다. 1945년 2월,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모여 전후 질서를 협의했다. 독일 처리 문제와 유엔 창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의 종결을 위한 소련의 참전 조건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는 단 30분...
[사회/문화]
...민중항쟁은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주도적으로 만든 활동임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들이다.
대중조직과 전위조직을 망라한 다양한 조직과 단체의 활동상도 서술되어 있다. 한인들이 최초로 만든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과 볼셰비키 한인 2세 중심의 전로한인공산당, 오랜 기간 대립하게 되는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와 고려공산당 상해파, 일본에서 활동하던 북성회와 이들이 국내로 들어와 만든 북풍회, 국내에서 활동을 해오던 서울청년회 등 조선공산당의 주요 그룹은 물론,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농총동맹,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신사상연구회 등의 활동도 소개했다.
책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진 이동휘나 조봉암, 이재유, 김삼룡, 이현상의 경성트로이카 이외에도 뜨겁게 살다 간 수많은 운동가들의 생애와 만날 수 있다...
[학술논문] 북한산성의 승영사찰僧營寺刹 ― 사찰의 역할과 운영을 중심으로
조선 숙종 37년 북한산(혹은 삼각산)에 북한산성北漢山城이 축성된 후 성내에는 승군僧軍이 주둔하는 10개의 승영사찰僧營寺刹이 새로 건립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들 각 사찰에 주목하여 사찰의 위치와 역할, 운영 등을 비롯해 그것의 위상과 불교사적 의미 등을 살펴보았다. 이들에 대한 연구는 조선후기 북한산성이 갖는 중요성과 함께 승군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작업으로 보인다. 산성의 방위를 위해 승군이 주둔한 승영사찰은 3군영三軍營의 담당구역 내에 건축된 3대문大門‧3소문小門‧7암문暗門‧중성重城의 인근에 위치하여 대부분 성곽의 수비를 담당했다. 훈련도감訓鍊都監 소속의 상운사‧서암사‧진국사 등은 북문北門을 중심으로 하여 산성 북쪽을, 금위영禁衛營 소속의 보국사‧보광사‧용암사‧태고사 등은 대동문大東門(현
[학술논문] 백석정 별서유적 및 백석동천 연원에 관한 연구
This article studies on the history of the bower of Baeksukjeong(白石亭) in Baeksukdongcheon(白石洞天) which is located in the northern valley of mountain Baek-ak(白岳), the east side of Tangchoondae(蕩春臺) near the mountain of Bookhansan(北漢山). The history of the bower of Baeksukjeong(白石亭) has been not known recently and the only ruins of the bower remains. The area of Tangchoondae(蕩春臺), the north-ern area of
[학술논문] 조선후기 남한산성의 조영과 승군의 활용
본고에서는 조선후기 불교정책의 기조와 승군僧軍 활용의 양상을 국가정책의 전개과정 속에서 개관하고, 임진왜란 때부터 제기된 남한산성南漢山城 축성 논의와 전개과정, 승군에 의한 남한산성 수축과 사찰 조영, 방어체제 정비를 위한 승군의 조직화와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 임명 등의 문제를 검토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동아시아 중화질서의 변동기에 보여준 승군僧軍의 활약은 불교의 용인과 승역僧役의 제도적 운용이라는 정책 변화를 낳았다. 앞서 임진왜란의 의승군 활동은 불교의 위상을 제고시키고 사회적 인식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승려 노동력의 공적 활용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불교계 입장에서 큰 경제적 부담이기는 했지만 한편 승려 자격과 활동이 용인됨에 따라 불교의 인적 재생산과 존립이 가능해지는 계기이기도
[학술논문] 도선사 관음보살좌상을 통해 본 18세기 서울지역으로의 불상 이운 배경: 북한산성 승영사찰 개창을 중심으로
도선사 소장 석조보살좌상에서는 복장물이 발견되었다. 관음보살좌상에서 나온 복장유물은 「조성원문」1매, 「중수원문」1매, 후령통 1개, 분철된 『묘법연화경』2매이다. 「조성원문」과 「중수원문」을 통해 이 보살좌상의 존명은 관음보살이며, 1670년에 조성되어 1733년에 진관사로 이운된 것을 알려주며, 불상을 조성했던 조각승은 승호를 포함한 5명임을 알려준다. 조각승 승호는 17세기 후반부터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대표적인 조각승으로 이 관음보살좌상의 조성은 현재까지 밝혀진 승호의 가장 이른 기년명 작품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관음보살좌상>에서 발견된 이운 기록이 흥미로운 점은 불상의 조성과 이운을 통해 당시 18세기 조선 후기 불교계가 처한 상황이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학술논문] ‘平壤箕城圖’를 통해 본 平壤城의 構造와 現況
...평양이라는 주변 경관과 기록 혹은 기념을 목적으로 한 회화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 본고에서는 ‘平壤箕城圖’에 투영된 조선시대 후기 평양의 실제 모습을 통해 부성(내성), 중성, 외성, 그리고 북성으로 구분하여 현황과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검토와 북한의 고고학 자료를 비교한 결과, 외성 성벽의 구조에 대해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북한 측에서는 평양성은 모두 석축으로 되었다고 하나, 문헌과 지도에서는 토성으로 축조된 것으로 기록된 사실과 대비된다. 또한 북성의 우마성은 고려 대몽항쟁기의 甬道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성의 방어기능을 높이기 위한 옹성 포대의 성곽으로 변화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하였다. 이 연구는 조선시대 평양성의 현황과 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서경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