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试论高句丽弓矢文化② ― “弓矢图”与高句丽“弓矢文化” ―
궁시(弓矢)는 원시시대부터 가장 우수한 비병(飛兵)으로서 사람들의 생활에서 불가결의 도구였으며 또한 무기였었다. 이는 화약무기의 사용이 시작된 중세기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도 무기계의 주요 위치에 놓여 있었다. 고구려족(高句麗族)을 포함한 한국 고대 여러 종족들의 궁시가 매우 발달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강성하였던 고구려의 궁시가 역시 대표적이라 생각된다. 고구려궁의 우수성으로 하여 주변나라에서 고구려에서 “출호궁”(出好弓)한다는 미명을 얻기도 하였다. 궁시문화(弓矢文化)는 북방민족이 공동이 지니고 있는 문화의 일종이긴 하지만 고구려와 같이 궁시 관련 내용이 문헌에 빈번히 출현하고, 실감 있는 벽화가 자주 등장하며, 풍부한 고고유물이 출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본고에서는 고구려벽화에서
[학술논문] 전석혼축벽화고분(塼石混築壁畵古墳)의 등장과 축조 집단
4세기 초, 고구려는 313년에 낙랑군(樂浪郡), 314년에 대방군(帶方郡)을 차례로 정복함으로써 한반도 서북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이는 고구려 대외 팽창의 중대한 전환점이자, 서북한 지역의 정치·문화 지형을 재편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 시기 평양·안악 일대에는 기존의 전축분이나 석실봉토분과 구별되는 독특한 묘제, 즉 전석혼축벽화고분이 등장하였다. 전석혼축벽화고분은 석재와 전축의 혼합 구조에 벽화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구조적·내용적 차별성을 지니며, 단순한 전축분의 말기적 변형이 아니라 복합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과도기적 묘제로 평가할 수 있다. 기존 연구는 이 무덤 양식을 전축분이나 고구려 벽화고분의 일부로 간주하면서, 그 축조 집단의 성격을
[학술논문] 한국전쟁 직후 남북한 전통음악연구 배경과 양상
...따라서 궁중음악 중심의 연구가 토대가 되었고 민속악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향을 띠었다. 이런 연구방법을 후대에 실증사학(實證史學)적 방법론이라고 하여 긍정적이라고 평가되고 있지만, 그때까지는 고고학이나 역사학 · 민속학 등이 적절히 결합되지 못한 한계를 가졌다. 북한은 ‘과학원’(科學院)의 연구정책과 관련하여 역사민속학(歷史民俗學)적 방법에 의한 고분벽화(古墳壁畵)의 악기와 연주도(演奏圖) 분석을 통해 고대음악사를 해명하려했던 경향이 두두러졌음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악학궤범』(樂學軌範) 영인과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초기에 있었던 고악보에 대한 주제보다는 현장연구에 바탕을 둔 창극(唱劇)과 민요 등 민속악에 큰 집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학술논문] ‘덕흥리벽화고분(德興里壁畵古墳)’의 현실 동벽(玄室 東壁)에 묘사된 ‘칠보행사도(七寶行事圖)’의 성격 검토
본고에서는 북한 학계의 입장에서 쓰여진 덕흥리벽화고분에 관한 초기 보고서의 분석 및 관련 묵서들의 판독안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현실 동벽의 칠보행사도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불교적 이상이 특정한 전거(典 據)를 가지고 있으며, 이 내용이 그림과 묵서 표현에도 상당부분 반영되었다는점 등에 주목하였다. 이에 고분의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칠보행사도가 차지하는 위치를 먼저 살폈고, 이후 도상의 묵서 판독과 해석, 그리고 등장인물들의특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였다. 특히 불교행사로서 칠보행사가 지니는 종교적의미를 『무량수경』 등 관련 경전의 내용을 통해 밝힘으로써 그림에 등장하는인물들의 성격, 그리고 ‘중리도독(中裏都督)’ 및 묘주 진(鎭)과의 관계에 대한기존 이해도 재고해보았다
[학술논문] 정현웅의 『조선 미술 이야기』 연구
...‘인민’들이 민족문화유산의귀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무지함에 대한 계몽적 성격을 띠고 쓰여 졌다. 그가 1953년부터 고구려 고분벽화의 모사작업에 헌신하면서 한국 고미술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고, 서양화가(西洋畫家)로부터조선화가(朝鮮畫家)로 전향을 하게 된 것은 이 책을 쓰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현웅이 안악3호분의 고분벽화 모사작업부터 『조선 미술 이야기』의 간행 배경에는 무엇보다 해방후 혼돈기부터 북한의 체제 정립과정의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셋째는 ‘인민’에게 과거의 우수한 전통과 문화와 풍습을 바르게 알게 하여, 결과적으로 애국적 정서를 양성하는 김일성의 교시를 보여주기위해 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