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新羅統一의 現代史的 意義
한국사는 분열과 통일의 연속이며, 현재 제3차 분열의 상태이다. 분열기에는 국력과 문화가 쇠퇴하였으나, 통일기는 민족과 문화가 발전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오랜 기간 준비와 국력의 강화로 이루어졌다. 제1단계(한강유역 차지, 553). 제2단계(백제 정벌, 660), 제3단계(고구려 정벌, 668), 제4단계(중국 당나라 군대 축출, 676)의 150여년 과정으로 거친 후 민족의 융합으로 이룩되었다. 특히 중국 당과의 외교에서 능동적 이용과 주체적 입장은 오늘날 큰 교훈이 된다. 황룡사 조성(553)으로부터 시작된 민족문화의 개발은 9층탑(643)과 월지(안압지) 건설(674)이 있었고, 불국사 건립(751)으로 이룩되면서 문화의 뒷받침으로 매듭짓게 되었다고 말하겠다. 우리는 남북통일을 기다리면서, 한강유역이...
[학술논문] 도라지 음악의 역사 상한선과 변천과정에 대한 연구
...출판한 『민요연구 자료집』 1~9권에 수록되어있다. 『인지요록』이 편찬된 것은 1171년이다. 이는 고구려가 멸망한지 503년이고 중세고려가 새워진지 253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쟁이 한반도에서 향악(鄕樂)연주에 사용되지 않았고, 중국과 일본의 옛 문헌들은 고구려와 고려를 같은 말로 사용했고, 일본에서는 고구려가 멸망한지 179년 후에도 고구려․신라․백제․발해 음악을 합쳐서 고려(고구려)악이라 했고, 고구려악이 중국에서 9세기에도 여전히 환영받았고, 일본 쟁 음악이 중세 고려 건국 이전에 이미 성행을 이룬 점을 미루어 볼 때 쟁 음악 <길간>은 중세 고려의 음악이 아니라 중국에서 일본으로 유전된 고구려음악임을 말해준다. 『민요연구 자료집』 1~9권에 수록된 도라지노래들은 <구 도라지타령(1)>․<구...
[학술논문] 북한의 가야사 연구현황
... 고조선 유민들이 남하하여 진국에 속한 변한지역에 구야 봉건소국을 세웠다. 1세기 초엽에 북쪽으로부터 남하한 김수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세력이 구야 땅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 이주해왔으며, 이미 있던 지배세력과 결탁하여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기원 1세기 중엽경에 금관국을 중심으로 하는 가야 봉건국가들이 연맹체를 형성하였다. 가야 멸망 원인은 가야가 중앙집권을 지향하면서도 분권적 소국연합체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중앙집권적 권력구조형식을 취한 신라의 침공을 막아내지 못한 것으로 이해했다.
[학술논문]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 부거리 일대 발해 고분 연구
...석축묘들과관련해서는 막연히 고구려의 색채가 강하면서도 독특한 지역성을 보인다고 강조할 뿐, 구체적인 검토가 진행되지 못했다. 최근 들어 이 일대 석축묘들의 조성집단과 시기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본 연구 역시이 의문 해결에 동참하고자 진행하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무덤 구조와 장속에서 보이는 특징과 출토 유물, 특히 토기류와 마구류를 중심으로 한 형식상의 특징 파악에 주력했다. 또한 선행 연구들에서 제기된 의문점들을 함께 검토해보며 부거리 일대 고분군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논해보기 위해 고구려, 신라, 당, 발해, 통일신라, 요금대, 일본 등의 자료들과의 비교분석을 진행했다. 부거리 일대의 석축묘들은 발해 건국 이후부터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조성 집단은 고구려 멸망 이후 잔존했던 고구려 유민들이 주를...
[학술논문] 2000년대 이후 북한의 고구려사 연구: 『조선단대사: 고구려사』(2006~2008) 분석을 중심으로
... 등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ㆍ구분함과 동시에;‘영토완정’의 의미를 강조ㆍ부각시킴으로써;‘삼국통일’에 버금가는 과업으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영토완정’과 ‘삼국통일’;이 두 가지 과업을 ‘국토통일’의 일환으로 해석함으로써;고구려의 건국부터 멸망까지를 ‘국토통일’을 위한 투쟁으로 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