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망각된 냉전체제하의 <아리랑>-1963년, 남북단일팀 국가가 되기까지의 남북한 <아리랑> 정전화 과정
...있던 통속성은 음반 산업과 결합하여 더욱더 확산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통속성에 가려져 있던 저항성은 부각되지 못했다. 그 속에서 <아리랑>이 다시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주로 주한미군에 의해서이다. 그들은 조선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에 관심을 갖고 공식 행사에서 연주하는 한편, 54년에 반공 영화 『아리랑』을 한국과 공동 제작하면서 <아리랑>에서 점차 통속성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57년에 나운규 서거 20주기를 기념하여 영화 『아리랑』 리메이크가 제작되는 흐름으로 이어져, 재차 항일 저항의 메시지가 대중적으로 선전되었다. 한편 북한의 경우는 당초부터 민족음악 건설의 기초자료로서 그 가치가 천명되어 일찍이 민요의 계승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학술논문] 북한 개혁ㆍ개방 시대의 남북 애니메이션 협력 전략
...상대적 우위 요소가 아니다. 남북 애니메이션 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미개발 문화원형 창작소재, 북한이 발전시켜 온 시나리오 서사 역량과 남한의 작품 기획개발 역량이라는 ‘요소 조건’ 을 결합하어 남북 공동제작 창작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남북 공동제작 프로젝트는 남한의글로벌 마케팅 역량 투입을 통해 해외시장 수익 확대로 ‘수요 조건’을 개선할 것이며, 남한이 보유한 ‘관련 및 지원산업 요소’인 캐릭터 산업과 디지털 유통망을 활용하면 시장 확대를 통해 남북 애니메이션 산업의 ‘수요 조건’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남북 공동제작 프로젝트에 해외 파트너를 참여시킴으로써 협력의 지속성을 담보하고, 남북 애니메이션 산업의 장기적인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학술논문] 1950년대 북-소 공동제작 영화에 나타난 북한무용의 트랜스 컬처성 연구 - <사도성의 이야기>와 <형제들>을 중심으로
본 연구는 1950년대 북한과 소련의 영화교류의 역사를 통해 트랜스 컬처적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 북-소 공동제작 영화인 <사도성의 이야기>와 <형제들>에 등장하는 북한무용의 트랜스 컬처성과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다. 발레영화 <사도성의 이야기>(1956)는 1954년 최승희가 창작한 같은 제목의 무용극을 영화한 작품으로 북한 최초의 총천연색 예술영화이다. 영화 <형제들>(1957)은 최초의 북-소 공동제작영화로 영화사적 의미가 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그동안 북한영화사에서 평가절하 되었다. <사도성의 이야기>는 소련 발레 문화가 북한의 최승희 방식으로 형상화 된 무용극으로, 최승희가 직접 여자 주인공 금희를 맡아 열연하였다. <형제들>에서는...
[학술논문] 1960년 전후 재일조선인 미술가의 활동 —총련 기관지(紙)를 중심으로—
...계획했던 것이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와 중립입장의 『統一朝鮮新聞(통일조선신문)』은 문화제와 ‘련립전’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지만 민단 기관지 『民主新聞(민주신문)』은 보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민단의 단장이 또 다시 바뀌고 민단 내부에서 합동 문화제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총련의 지원으로 주어진 테마로 공동 제작과 미술전을 개최하고 있었으며 1962년에 『재일조선인 화집』까지 발행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북한의 ‘집단 창작’이라는 의도가 내재하고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미술가들의 공동(합동)제작은 짧은 기간 내에 양성하기 어려운 미술가를 북한으로 흡수하는 과정의 하나라고도 볼 수가 있다. 귀국한 미술가들은 ‘조선화’를 토대로 개인적인 창작 활동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