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남북관계]
...『로동신문』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읽고 꼼꼼히 정리하였다. 그 결과 북한이 밖으로는 핵을 통한 ‘사회주의 강(소)국’을 외치고 안으로는 ‘사회주의 문명국’을 자부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김정은 시대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혁명과 선군에 복무하는 문학을 강조했던 선대와 달리 ‘인민생활 향상’으로 불리는 애민, 민생 담론이 부각된 점이다. 그에 따라 혁명 투사, 선군 투사 보다 ‘만리마 속도’를 창조하는 ‘만리마 기수’, ‘과학기술 룡마’ 탄 기수로 이미 지가 만들어진 청년 과학기술자 캐릭터를 중시하고 그들의 애정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리는 일상성이 강화되었다. 앞으로 평양에서 나올 ‘조선문학사(2010...
[정치/군사]
... 집중해 왔다. 초기부터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원자로와 핵 관련 설비, 기술을 도입했다. 이후 국내산 원료로 순환하는 원자력 주기를 구축하면서 국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고도화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리과대학, 물리대학 등에서 양성되는 인력들은 사회주의 핵기술 개발경로를 추종하고 현대화하는 핵심 과학기술자들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6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기본형 원자탄과 수소탄을 개발했고, 우라늄 농축으로 핵무기 수량을 크게 확장해 왔다. 최근에는 투발 수단을 확장해 핵전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2023년 7월 13일에는 고체추진체 ICBM인 “화성 18호”의 고각 발사(본문 296~312쪽)에 성공했다. 탄두 중량이 불투명하지만, 북한이...
[학술논문] 1950년대 한국 과학기술계의 지형도
이 논문은 1950년대의 한국(남한) 과학기술계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당대 지식인들의 과학기술관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으로서 당시의 과학기술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이 글의 첫 번째 목적이다. 그리고 과학기술계의 현황을 이해함으로써 당대 지식인 사회에서 과학기술 담론이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것이 또 하나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일제강점기 과학기술인력의 첫 세대가 형성된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고, 이어서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을 지나 분단체제가 고착될 때까지 주요 과학기술인의 이동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1950년대 말 초반 남한의 과학기술계는 어떠한 현실인식과 요구사항을 정립하게 되었는지 『사상계』의...
[학위논문] "제1장 서론 1 제1절 연구의 목적과 의의 1 1 연구의 목적 1 2 연구의 의의 4 제2절 연구의 전제와 범위 7 1 연구의 전제 7 2 연구의 범위 9 제2장 북한 특수경제지대법제와 경제개발구법제 11 제1절 특수경제지대의 역사와 규범체계 11 1 특수경제지대정책의 변화 11 (1) 특수경제지대정책의 시작 김일성
...유전학자들을 숙청하였다 부르주아 과학과 프롤레타리아 과학의 대립 구도에서 미추린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 생물학으로 인정을 받아 유일한 과학적 원리로 채택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과학적 이데올로기’ 미추린주의는 194050년대에 신생 사회주의 국가 북한에 그대로 수입되어 전파되었다 일본유학을 통하여 고전 유전학의 기초를 닦은 누에 유전학자 계응상은 월북하여 연구에 종사하던 중 일시적으로 사상 검열의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미추린주의가 생물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북한의 상황에서 계응상은 멘델모건주의를 부정하는 선언을 하였고, 누에에 대한 육종학 및 육잠학 연구에 매진하였으며 또한 북한의 과학기술자 우대 정책과 과학 중시 사상에 힘입어 과학자, 과학기술계 지도자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학술논문]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과학기술자 되기―초기 북한 이공계 대학 교원들의 이력 분석
...어떻게 과학기술자가 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다양한 과학기술자들을 포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과학기술자로 성장하는 생애주기 전반을 살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당시 조선인들이 과학기술자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4개의 관문, 즉 도시 인근 출생, 근대 교육 입문, 고등교육 진학, 졸업후 직업 선택을 거쳐야 했다. 이 과정을 거쳐 형성된 조선인 과학기술자 집단은 고유의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첫째,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유학파들이 과학기술에서 주도세력으로 떠올랐다. 둘째, 과학기술자들이 가장 크게 부족했던 공통점은 연구경력의 결여였다. 셋째, 전시에 행해진 강제 배치와 노역으로 인해 기업을 기피하는 과학기술자들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넷째, 과학기술은 중하층 출신이 주되게 진출하는 영역으로 그 사회적 위상이...
[학술논문] 주체문학 전성기 『조선문학』(1968∼94)의 매체전략과 ‘3대혁명소조원’ 전형론
...형상이 대표 전형으로 부각되었다. 이들은 성혜랑 단편 「혁명전위」(1974) 주인공 영희처럼 수령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절대 덕목으로 갖춘 ‘청년인테리’이다. 빨치산 투쟁과 전쟁 체험, 의욕만으로 혁명을 수행했던 선배 세대와 달리 정규교육을 받아 이론과 논리로 무장한 지식인·과학기술자, 기술교육을 받은 청년 노동자·농민이 바로 '3대혁명소조원'의 전형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문제가 속속 드러나면서 이들 형상은 더 이상 전형성을 얻을 수 없었다. 지도자에 대한 절대 충성과 헌신성을 갖춘 만능천재 같은 이들 형상은 북한의 현실에 기반을 둔 전형이 아닌 지나치게 이상화된 문화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학술논문] 해방 직후 북한 과학기술 교육기관 교원의 충원과 구성(1945~1948)
...과학기술 교육기관의 교원 충원과정에서 나타난 식민지적 연속성과 북한의 기술인력 활용실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해방 직후 중공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삼은 북한은 각 공장을 운영할 기술자가 부족함을 자각하고, 단기적 대안으로 남한의 과학기술자 월북 사업과 잔류 일본인 기술자의 유용(留用)을 결정하였다. 이렇게 잔류한 일본인 기술자들은 공장 복구뿐만 아니라 일부는 교육 사업에 투입되어 각종 기술원양성소와 기술전문학교, 공업대학 등에서 교원으로 임용되었다. 이들은 북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기술교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북한의 정치사상적 안정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 기술자로서 기술교육만을 담당하는 일본인 기술자들과는 달리 민족간부를 양성하는 기관인 대학에 임용된 조선인 교원들은 정치사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