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남북관계]
...어느 쪽도 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1980년대를 지나며 냉전 체제가 이완되면서 변화가 생긴다. 한국은 북방 정책을 통해 국제적 여건을 조성하고, 남북한 고위급 회담 등에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을 강력히 설득한다. 이런 외교적 노력이 1991년 열매를 맺어, 제46차 유엔총회를 통해 한국과 북한은 유엔 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
본 총서는 외교부에서 작성하여 30여 년간 유지한 남북한 유엔 가입 관련 자료를 담고 있다. 한국의 유엔 가입 촉구를 위한 총회결의한 추진 검토,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한 지지 교섭 과정, 국내외 실무 절차 진행, 채택 과정 및 향후 대응, 관련 홍보 및 언론 보도까지 총 16권으로 구성되었다. 전체 분량은 약 8천 쪽에 이른다.
[정치/군사]
1991년의 남북한 UN 동시가입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반세기에 걸친 우리 외교의 비원을 해소하였을 뿐 아니라, 남북한 관계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또한 이는 냉전 구도가 해체되는 국제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여 소련과 중국의 외교적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이루어낸 대한민국 외교의 쾌거였다. 따라서 남북한 UN 동시가입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요인과 그 외교적 성과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선 미국·소련·중국 등 주변 열강을 상대로 이뤄진 구체적인 외교교섭의 경위와 함께 북방정책과 남북관계의 거시적 로드맵 속에서 그것이 가진 의미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주요 정책결정자와 외무당국자들을 초청하여 각각 2시간 내외에 걸쳐 심도 있는 질의와 응답을 진행하고...
[법/인권]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4년 동안 북한인권특사를 임명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관계에 있어 인권을 부차적 문제로 취급했다. 북한이 인권문제를 불편해했기 때문에 인권문제를 아예 제기하지 않아야 북한이 핵무기 제한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미관계에서 인권이 고려되는 경우는 다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섭 수단으로 간주될 때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1월 첫 국정연설에 북한인권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오토 웜비어의 부모와 한국에서 온 탈북민을 초청하고, 연설 내용의 상당부분을 북한인권 문제에 할애했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달라졌다. 2019년 1월...
[학술논문] 駐베트남 한국 공관원 송환을 위한 신호게임, 1975-1980
...심문, 전향권유, 그리고 “타의망명”으로 표현되는 강제북송 위협까지 받았다. 한국 정부는 억류․수감된 공관원들의 석방을 위하여 외교적 통로와 비공식적 통로까지 활용하는 전방위 외교를 전개하였다. 신호이론은 베트남에서 억류되었던 공관원을 송환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석방교섭행태를 이해하는 데 두 측면에서 도움을 준다. 첫째, 한국 정부는 억류된 외교관과 수감된 공관원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교섭을 진행하면서 철저하게 언론보도를 통제하였다. 당시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는 언론 공개를 통하여 유발되는 국내청중비용이 약했기 때문에, 언론 공개를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둘째, 한국 정부가 수감된 공관원의 석방을 위하여 감수할 금전적․정치적 비용에 비례하여, 베트남 정부가 반응하였다....
[학술논문]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북일관계의 변화: '상황적 경직화'에서 '전략적 유연화'로 전이된 교섭 외교
...본 연구에서는 북한과 일본의 교섭 외교를 설명하는 이론화 작업을 통해, 한일국교정상화가 북일관계의 지형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북한과 일본은 1990년 3당 공동선언을 계기로 제1차 수교를 위한 교섭회담을 실시한 이래, 현재까지 총 14차례의 정부 간 수교 교섭회담과 2차례의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교정상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북일관계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상황적 맥락에서 본 연구는 북일 양국이 한일국교정상화 이후부터 1990년 3당 공동선언 이전까지 ‘상황적 경직화’로, 3당 공동선언부터 현재까지 ‘전략적 유연화’로 전이된 교섭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가설을 설정하였다...
[학술논문] 접경된 해항도시들의 정치경제와 대외교섭: ‘창지투(長吉圖)’와 ‘나선특구’를 중심으로
...대외교섭의 상황을 분석하려 한다. 지난 2009년 중국은 두만강 주변 북․중 접경지역에 이른바 ‘창지투(長吉圖) 선도구 개발’을 선언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북한은 ‘나선(나진․선봉) 특구 개발’을 발표하였다. 이는 중국이 두만강 접경지역인 창춘~지린~투먼~훈춘을 전진기지로 삼고, 북한의 나진항과 선봉항의 사용권을 얻어내어 환동해권으로 네트워크 확장을 기도한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까지 창지투 선도구와 나선특구는 각각 동북아시아의 경제협력 뿐만 아니라, 새로운 국제정치질서 및 세력 재편의 무대로 부상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대북정책과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미치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창지투와 나선지역이 가진 이러한 변경의 정치경제와 대외교섭의 본질을...
[학술논문] 트럼프 2기 초반에 보이는 일본의 대미외교전략 연구: 최초 미일 정상회담을 중심으로
...대부분 명기시켰다. 안보문제가 공동선언 내용의 전체 3/4을 차지한 것은 일본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또한 경제문제에서도 대미투자 1조달러, LNG 등 에너지 수입, 우주개발, 광물공급체인 확보, AI, 반도체등 첨단기술 협력 등 미국측의 구미가 당기는 사안들을 선제적으로 미국에 제시함으로써 무역불균형 등 일본측에 불리한 내용들은 공동선언에 포함시키지 않도록 유도하여 정상회담 분위기를 매우 우호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같은 성과거양은 일본이 외교 총력전을 전개한 결과인데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캐릭터, 대일 친분관계 등을 면밀히 점검하고 과거 미일협의과정을 참고하여 일본측 주장을 최대한 관철시키는 성과를 거양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대미외교 교섭에도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학술논문] 1910~1920년대 일본과 중국의 압록강 국경문제 인식과 대응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를 측량 조사하고 세관을 설치하여 갔다. 이 시기 일본의 압록강 국경문제 전략은 중국의 압록강 국경 획정 시도를 회피하면서 압록강 하구에서 자국의 이권을 확대 유지시켜 가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반면 1920년대까지 중국은 일본과 압록강 국경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이를 기회로 삼아 압록강 국경을 획정하려 하였다. 1910년 이후 압록강 국경을 획정을 위한 중국과 일본의 외교 교섭은 없었다. 1920년대 중국의 압록강 국경 획정을 위한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이후에도 압록강 국경은 획정되지 않았다. 1964년 북한과 중국이 조·중변계의정서를 체결할 때까지 압록강이 ‘국경선 없는 국경’으로 존재하였던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