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무국적 탈북자의 인권 보호
...있다. 난민협약이나 무국적자 지위협약에 따르면 무국적자들에게 필요한 조치로 여행증명서 발급 등 신원을 보장해주는 일이다. 소속이나 신원이 확인된 후에야 이주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권 향유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제도적 조치가 분명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무국적 탈북자의 경우에는 기존의 귀화절차 적용과 국적판정제도 운용, '사실상의 탈북자'로서 귀화요건의 완화조치, 국적법에 무국적 탈북자를 위한 독립적인 특별귀화절차 혹은 전문적인 실질심사를 통한 한국 국민으로서의 인정할 수 있는 정책 마련, 1951년 난민협약의 적용으로서의 난민으로서의 지위 인정, 신원보장 및 권리 부여, 1954년 무국적자 협약의 적용에 따른 무국적자 지위의 인정과 협약에 따른 권리 부여, 국제인권법상 보완적 보호의 부여,...
[학술논문] 귀화의 에스닉 정치와 알리바이로서의 미국 -‘해방’ 이후 장혁주의 선택과 「아, 조선(嗚呼朝鮮)」(1952)-
...실제적으로는1952년까지 국외 이동시에는 보장되었던 일본 국적으로 입국할 수 있던덕분이기도 했다. 결국 당시의 남북한 국민국가 체제 경쟁에 대한 의미있는 성찰과 비판조차도 ‘국민’의 신분을 획득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던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일본 국민의 신분으로 적정 거리를 두고 취재한 한국전쟁은 많은 조선인들이 난민으로 전락하는 비참한 현장이었다. 이 난민화하고 있는 조선인들의 현실을 수용소와 고아의 메타포를 통해 형상화한 것이 바로 그의 장편 �아, 조선�(1952)이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 성일은 끊임없이 남이냐 북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만, 난민/국민의 경계에서 자연인 장혁주가 결국 선택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발화 조약 이후 귀화 이외의 에스닉 정치를 인정하지 않은 일본으로의 귀화였다.
[학술논문] 영토변증설(領土辨證說)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헌법 제3조는 재건 사업 완수의 영토적 범위를, 제4조는 그 방식으로서 평화 통일을 명하고 있다. 따라서 양자는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에 있는 규정들도 아니고 상호 모순되는 규정들도 아니다. 헌법 제3조는 북한 지역 편입 방식의 통일을 명하고 있지만, 이 규정이 신(新)헌법 제정 방식의 통일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남한이 북한을 국제법적으로 승인하지 않는 것은 국적의 단일성을 유지하고 통일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남한에 입국하거나 남한의 국가기관과 접촉하는 북한이탈주민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별도의 귀화 절차 없이 남한 주민과 동등한 대우와 보호를 받아야 한다. 반면, 중국 등 제3국에 체류하는 북한 주민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남한 또는 북한의 보호를 선택할 수 있다.
[학술논문] 환동해권의 소수민족 정책과 정체성 ―재외한인의 사례
...한다.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자치 정책에 힘입어 독자적이고 전통문화 생활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반면, 이들은 대개 국민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이 다른 이중정체성을 띤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배타적 차별 정책의 반발로 북한의 지원 하에 민족교육을 받아 사회주의적 편향이 강하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경제적 성장과 한류 등의 영향으로 한국 국적 취득 및 일본 귀화도 동시에 증가해 민족 정체성이 유동적이고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는 양상이다. 연해주 고려인들은 러시아의 소수민족 탄압 및 분산 정책으로 인해 현지 언어 등을 포함하는 문화적 동화가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재외동포의 디아스포라와 다문화 경험을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2003년 제정한 해외동포법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환동해권 재외동포, 특히 조선족과...
[학술논문] 오키나와의 아리랑 - 미군정기 오키나와의 잔류 조선인들과 남북한
...미군의 오키나와 통치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오키나와에 친미반공 독립국의 형성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제3세계해방운동 속에서 민족 재결합이라는 공동 목표 하에 오키나와의 조국복귀운동과 연대했다. 당시 주민의 다수가 복귀를 희망했으므로 남한은 ‘군대의 논리’에, 북한은 ‘주민의 논리’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군정기의 오키나와에 접근할 수 없었던 총련의 ‘주민의 논리’는 대다수가 민족 해방이 아닌 귀화를 선택했던 잔류 조선인들의 현실에 부합하지 못했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국가와 역사로부터 망각당한피해자가 발견되었을 때, 피해자의 존재를 품고 역사 속으로 이끄는 안내자의 논리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