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신석구의 기독교 사회윤리사상 연구
신석구는 19세기말 전통적 유교집안에서 태어나 유교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자랐다. 그는 청년시절 정신적 방황과 윤리적 타락을 극복하고 기독교를 접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그는 기독교를 유교의 이념과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종교로 확신하고, 국권상실이란 상황 속에서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종교로 이해하였다. 목회자로서 가난과 고난의 연속이었으나, 그 자신이 철저하게 언행일치의 윤리를 실천하였다. 한말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이후 시련 속에서 ‘잃어버린 국민’을 되찾기 위해 전도인이 되었고, 평생 ‘민족’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치보다 교회를 우선시하는 보수적 신앙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1운동에 민족대표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일제말기에는
[학술논문] 해방 후 기독교세력의 동향과 국가건설운동
해방 후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에는 각각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함으로써 군정이 실시되었다. 해방 후 한국교회는 일제 말기에 파괴된 교회를 재건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을 뿐 아니라 남한 지역에는 기독교에 우호적인 미군, 북한지역에는 비우호적인 소련군의 군정 실시로 큰 변동이 일어났다. 소군정아래 공산세력의 탄압에 맞서던 북한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견디지 못하고 남한 지역으로 대거 월남하였다. 이런 월남은 한국교회와 기독교세력의 동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승만․김구․김규식 등 기독교 지도자들의 귀국은 기독교세력에 정치사회활동에 큰 계기가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사회활동의 거점이 될 단체들이 설립되었다. 또한 한국 기독교인들은 적대적 소련과 공산주의에 맞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