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북한의 국가형성과 조선최고인민회의 선거
남한에서 단독 선거가 실시되어 국회가 조직되자 북한의 국가형성 과정도 북한만의 반국적인 차원을 넘어 남북한의 모든 정치세력을 망라해서 전국적 의미를 갖는 좌파 중앙 정부를 수립하는 것으로 그 성격이 급격히 변모했다. 좌파 중앙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조선최고인민회의 선거가 실시되었다. 북한에서는 직접선거로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고, 남한에서는 먼저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를 선거하고 여기서 다시 대의원을 선거하는 간접선거가 실시되었다. 조선최고인민회의를 구성할 때 남한의 정치세력, 특히 중간파, 우파, 무소속 정파를 끌어들이기 위해 상당한 배려가 이루어졌다. 조선최고인민회의 선거는 참여 세력의 범위에서 남한의 단독 선거에 비해 현저히 넓은 정치적 지지기반을 확보했다. 1948년 조선최고인민회의 선거를 거치면서 소비에트...
[학술논문] 북한정부 수립 문제와 최고인민회의 선거
이 논문은 1948년 남북 분단과 남한 단독선거가 사실상 결정된 상황에서 북한 정부 수립 논의와 그의 실천적 조치로서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살펴본 글이다. 공산측은 분단이 가시화하고 남한 단독선거가 결정되자 이에 맞서 북한 정부 수립 준비에 들어갔으며, 그 정부에 어떠한 성격을 부여할 것인지 고민하였다. 결국 그들은 임시적 성격이 아닌 ‘통일적’ 정부 수립을 결정하고 남북한에 걸쳐 전국적인 선거 실시를 기획하였다. 남한에서는 연판장 서명을 중심으로 한 ‘지하선거’를 실시하여 1,080명의 대표자를 선출하였다. 그러나 이 선거는 비합법적 공간에서 선거의 기본 절차가 지켜질 수 없었던 다소 형식적인 정치행사였다.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선거는 도·시·군인민위원회...
[학위논문] 1948年 平壤 「南北朝鮮 諸 政黨·社會團體代表者 連席會義」와 北韓의 統一戰線戰術에 관한 硏究
본 연구는 1948년 4월 19일부터 개최되었던 평양「남북 제 정당ㆍ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가 그 후 북한의 통일전선전술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규명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북한은 통일문제를 토의한다는 명분하에 평양 연석회의를 개최하고 남한의 일부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우익 정당 및 정치지도자들의 민족주의적 감정에 호소하여 좌익과 연대하여 회의에 참석케 하였다. 이 회의에서부터 북한은 이미 남한 적화를 위한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본 연구는 북한의 평양 연석회의와 관련된 통일전선전술노선을 주로 문헌조사 방법을 통하여 분석하였다.
한국의 정치적 분단을 해소하기 위하여 미국은 모스크바 미ㆍ영ㆍ소 3국 외상회의에서 한국 문제에 대해 토의하고 그 결정사항을 발표하였다. 그...
[학위논문] 통일의 원칙으로서 '자주' 이념 형성과정 : 통일독립촉진회 계열(1948-1958)의 지향과 활동을 중심으로
본 논문은 조선의 문제가 유엔으로 이관되고 1948년 11월 유엔의 결정으로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결정되자 이를 반대하고 자주독립통일국가를 수립하고자 김구와 김규식이 함께 연대하여 결성한 ‘통일독립촉진회(통촉)’에 대한 연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해방공간에서 반탁과 과도정권수립운동을 전개했던 한독당의 김구와 좌우합작운동과 민족자주연맹을 결성을 통해 국가건설운동을 전개했던 김규식은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결정되자 연대를 통해 ‘통일독립운동자협의회(통협)’를 결성한 후 남북협상을 진행하였다.통협의 결성은 외세로부터 민족생존권을 보장하고 미. 소로부터 민족자결권을 지키기 위한 방도였으며 통협 결성을 통해 북측에 남북협상을 제의하였다.남북협상을 통해 ‘전조선정치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