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사상계 경제팀’의 개발 담론
...손질됨으로써 제헌헌법에서 국가에 부여되었던 역할 중 공공성의 영역은 현저히 축소되었고, 국민생활은 자본의 논리와 생산력 지상주의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취약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국민생활의 안정과 향상, 복지국가의 실현이라는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군사정권 경제개발계획의 기본 목표로 표방되고 있었다. 이는 적어도 군사정권이 국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변화와 혁명을 표방할 수 없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군사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은 일종의 ‘수동혁명’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군정연장과한일협정 반대투쟁을 통해 군사정권과의 경계선을 찾은 사상계를 비롯한비판적 지식인들은 이제 군사정권에 의해 전유된 개발담론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대항담론을 만들어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학술논문] 생애사적 맥락을 통해 본 전통지식으로서의 민간요법 -단절과 변화, 지속의 메커니즘-
민간요법은 오랜 이전부터 집단적으로 전승되어온 무형문화유산이자 자연에 대한 민의 전통지식에 속한다. 하지만 민간요법은 의료 발달과 더불어 많은 부분이 자연 소멸되어 ‘기억 속의 문화’로만 존재한다. 민간요법은 지속적인 변화와 단절에도 불구하고, 자가 치료 및 건강 보전 혹은 경제적 수익 창출 등의 현실적 필요성에서 지속성을 갖는다. 일부 민간요법은 현대의료에서도 불가능한 치료 효능을 나타냄으로써 이른바 ‘틈새의료’의 기능을 갖는다. 이는 의료의 지속적 발달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민간요법이 지속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통지식으로서의 민간요법은 무형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인식과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향후 민간요법 연구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첫째
[학술논문] 1950~70년대 ‘사상계’ 지식인의 분단인식과 민족주의론의 궤적
...관주도 민족주의 캠페인을 통해 반공과 근대화를 두 축으로 하는 개발독재의 권력기반을 다졌다. 사상계 지식인들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보편 가치를 강조하며 쿠테타 세력과의 민족주의 논쟁에 임했다. 이후 사상계 지식인들은 박정희 정권의 대일 저자세 외교를 규탄하며, 그들 나름의 저항 민족주의를 정초해 갔다. 그리하여 민족주의를 놓고 관주도 캠페인과 민간의 대항 담론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3ㆍ1운동의 재현과도 같았던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을 거치며 사상계 지식인들의 민족주의 담론은 경제적 영역에서 정치적 영역으로, 저항적 차원으로 나아가며 면모를 일신하였다. 그들은 정권의 전매특허였던 ‘민족 주체성’을 주권자 국민의 이름으로 전유하고, 미국 중심의 자유세계론에서 한 발짝 물러나...
[학술논문] 한반도 분단질서의 균열과 담론정치: 영화 <건국전쟁>을 둘러싼 담론의 정치적 맥락, 특성과 반공복합체
...분석을 통해 2000년대 이후 분단질서의 균열이 시작되면서 반공을 중심으로 한 역사 재구성이 본격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해당 담론의 핵심 주장은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국부로 복원해야 하며, 그 근거는 자유대한민국의 건국과 성공적인 한미동맹의 체결에 기반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담론의 생산과 확산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기득권을 형성한 특정 단체와 인사들의 후원을 통해 진행되고 있었다. 연구자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분단구조를 지속·강화하려는 특정 집단의 담론정치를 경계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최근의 12.3 계엄을 통해 확인된 정치적 갈등과 남남갈등이 이러한 담론정치와 연결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 이에 대응하는 대항 담론의 생산과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학위논문] 1970년대 이후 동독, 베트남, 북한의 체제변동 비교연구 : '국가-사회'관계의 동학을 중심으로
...‘선군정치’를 통해 가까스로 ‘물리적 통제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자원제공능력’은 고갈되었으며 사실상 국민들은 방치되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기업들과 주민들은 시장 활동을 통해 생계와 경영을 이어나갔다. 당시 많은 주민들이 체제에 대한 불만을 지니고 있었지만 현존하는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항 담론을 찾지 못했다. 또한 북한의 철저한 감시체제로 인해 대규모 사회운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위기 상황 속에서도 국가의 우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가까스로 고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 역시 통제력의 약화, 계획경제의 이완, 비사회주의적인 문화의 등장을 용인해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세 국가의 상이한‘국가-사회’관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