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세기 말 평안북도 구성군 家戶의 구성과 거주 양태
...수 있었다. 조사 결과 내동면의 호당 가족원 수는 5.05였다. 호당 가족원 수가 비교적 많았던 것은, 내동면이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어서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았고, 1인 가구의 형태로 존재하는 상인이나 수공업자가 전혀 없었던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내동면은 다수의 동성 촌락과 소수의 일반 촌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가옥의 평균 규모가 크고, 1인당 평균 거주 면적이 넓은 동네는 대부분 동성 촌락이었다는 것이다. 내동면에 동성 촌락이 많았던 것은 이 지역이 유교적 성향이 강하였기 때문이었다. 내동면 호적에서 가족은 철저히 부계 직계 친족으로 구성되었고, 딸들은 잠재적 출가외인으로 여겨 일체 기재하지 않았다. 시집온 여성들의 성씨나 외조의 본관도 기재하지 않음으로서, 가족 구성에서 여성을 배제하거나...
[학술논문] 한말 황해도 殷栗郡 南上里坊 호적표로 본 가족과 마을
...되거나 남편의 형제가 호주 역할을 했다. 남상리의 19개 자연촌 가운데 무려 16개의 촌락이 특정 성씨가 50% 이상을 점하는 동성촌락이었다. 사실상 동성 촌락으로 이루어진 지역이었다. 동성 촌락은 확고한 사회경제적 우위를 가진 특정 성씨가 다른 성씨를 배제하면서 나타난 산물이었다. 동성 촌락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남성 위주의 상속을 통한 부계 혈연 구성원의 이주 제한과 양자 제도의 활성화, 그리고 문중의 발달이라는 조건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남상리 호적에는 시집온 여성들과 외조의 본관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여성 호주도 없었다. 약 10.9%의 가호에서 양자에 의한 혈연 계승이 이루어졌으며, 대부분의 자연촌이 동성 마을이었다. 은율군 남상리는 유교의 영향으로 부계 남성 위주의 가족형태가 철저히 유지된...
[학술논문] 19세기말 戶籍表로 본 平安南道 順川郡 戶의 구성
...직계가 아닌 傍系 가족도 4%에 불과했다. 순천군에서 보이는 ‘父系直系’ 위주의 가족 구성 원리는 당시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는 일반적인 경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 지방에 국한한다면 순천군 주민들의 경제적 수준은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추정은 경제력과 비례하는 1인당 가옥 규모를 통해 가능했다. 순천군 주민 직업의 특징으로는 상업 종사자가 11.8%에 달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들 상인들은 농업 종사자보다 평균적으로 1.19칸 넓은 가옥을 소유하고 있었다. 순천군에 상인이 많았던 것은 그곳이 교통의 요지이자 물자의 집산지였기 때문이었다. 상업 인구가 많고 교통이 발달한 곳이어서인지, 당시 한반도에 넓게 퍼져 있었던 동족촌락은 1곳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