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고구려 남부전선의 지휘관과 군사편제
...것이 사실이다. 이는 ‘末若’의 위상 및 편제에 대한 異見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말약’이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고구려 후기 군사편제 및 지방통치체제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이는 민감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행연구에서는 이에 대한 고민이 많지 않았는데, 본고에서는 이러한 견해 차이를 고고자료를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경기도 및 서울 일대의 고구려 관방유적을 토대로 고구려 남부전선의 관방체계를 살펴보고, 이를 『한원』에 나오는 고구려 후기 무관직과 연결시켜, 고구려 후기 남부전선의 군사편제를 복원하였다. 그중 논란이 되고 있는 ‘말약’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학술논문] 해방 후 김기림의 한글 전용 논의에 대하여(Ⅰ) - 논의의 맥락과 관련한 몇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김기림은 1948년 10월 말부터 약 1년 동안 한글 전용 문제를 다룬 네 편의 글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두 달여가 지난 시점이었고, 그가 시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조선문학가동맹은 임화, 김남천, 이원조, 이태준 등 주요 인사들의 월북으로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상황이었다. 한글 전용 문제는 이 시기 김기림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김기림은 왜 이 문제에 답을 얻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것일까? 이 논문은 한글 전용을 위한 김기림의 논리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밝히는 작업 이전에, 한글 전용 논의가 김기림에게 의미했던 바가 무엇이었고 이러한 글쓰기 행위가 놓인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이 무엇이었는지 살피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이를 집중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학술논문] 한국전쟁기 중국에서의 북한영화에 관한 연구
...폭격으로 평양지역은 파괴되어 예술영화제작은 더 이상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북한에서는 한국전쟁기 북한영화제작이 김일성의 지도하에 북한영화인들이 큰 어려움을 극복하고 북한지역에서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본 연구자는 관련 자료를 통해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고 중국동북영화제작소에서 1951년 중반부터 1953년 말까지 약 3년간 북조선영화촬영소 영화인들을 수용하여 그들에게 물질적 도움과 인적 지원으로 북한영화가 제작될 수 있게 협조했다는 숨겨진 사실을 복원하는데 주력했다. 또한 이 논문에서는 한국전쟁기 제작된 <소년 빨치산>을 비롯한 5편의 북한예술영화들이 중국에서 상영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한국전쟁 기간 중 중국정부는 북한의 전쟁선전영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