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해방기 문화공작대의 의제와 성격
...활동방향, 참여 예술인들의 내면과 이후 행보, 대중화의 효과와 영향 등-에 대해 시론적으로 논의를 제출하였다.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은 남한에서 거의 대부분의 진보적 활동이 불법화되고, 상당수의 예술인들이 월북한 시점인 1947년 중반에 남한의 지방 곳곳에 문화공작대를 파견했다.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문화대중화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천적 방침을 논의해왔던 문학가동맹을 중심으로 한 좌익문화진영은, 2차 미소공동위원회 재개를 통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공위축하종합예술제’를 개최했던 것이다. ‘인민을 위한 문화’ ‘문화를 인민에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총 4개대로 나뉜 예술인들은 지방민들을 위한 종합예술제를 기획했다. 이 행사는 연극, 영화, 음악, 만담...
[학술논문] 해방 후 김기림의 행적(업적) 속에 담긴 문화정치사적 함의에 대하여
...속에는 당대의 경향문학적 입장, 태도를 구출하려는 그의 생래의 절충주의적 태도가 다분히 깃들어 있는 것으로 살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김기림은 ‘조선문학가동맹’ 측에 발을 디딘다. 1946년 2월 중 개최된 ‘전국 문학자 대회’에서 시분과 대표 보고 발언을 행하였던 것이다. 김기림의 이 발언은 대체로 신중하고 온건한 내용 양상으로 좌우 구별 없는 민족적 통합에의 자세를 시사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로부터 1947년을 지나 1948년 정부수립기를 맞을 때까지, 혹은 ‘문학가 동맹’ 중심 인사들이 대체로 월북 행을 선택, 남한 쪽의 ‘문맹’ 측 활동이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을 맞기까지 그는 대체로 공식적 정치 노선 상으로는...
[학술논문] 정태병 동화 연구
...충족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화가 교조적이거나 교훈적인 한계에 갇혀있지 않고 재미와 즐거움뿐만 아니라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것은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 작가의 ‘어린이-되기’의 실천이다. 해방기부터 월북하기 까지 발표한 동화는 5편이다. 해방 전의 동화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의 어린이에 대한 관심은 더욱 깊어져 문학가동맹 아동문학분과위원의 활동으로 이어지긴 하였으나 이 시기의 활동 속에서도 특별히 이념과 사상이 깊이 개입한 작품은 없다. 재미와 웃음으로 상리공생을 꿈꾼 작품들로서 등단하던 시기부터 확인된 마지막 작품에 이르기 까지 오직 동심에 일관하여 글쓰기를 유지하였다. 아동문학가 정태병의 존재와 작품의 발굴은 한국아동문학사를 보완하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해방기가...
[학술논문] 조선문학가동맹의 『토지』 연구 - 좌우익 갈등기, 문학적 대응 양상을 중심으로 -
...직면하게 된 여러 문제에 대해 조선문학가동맹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본고는 『토지』를 통해 그 대응 양상의 실제적 한 예를 확인하고자 한다. 『토지』는 조선문학가동맹 특수위원회 농민문학위원회가 1947년 7월에 펴낸 소설집이다. 조선문학가동맹은 1947년에 이르러 집중적으로 다양한 간행 사업을 진행한 바 있는데, 『토지』는 연속 간행물로 기획된 1946년판 『조선소설집』(1947. 6. 20.), 『조선시집』(1947. 3)과 더불어 이 시기 조선문학가동맹의 활발한 출판 활동을 보여주는 주요 사례이기도 하다. 『토지』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그 편집자이다. 『토지』의 편집자는 조선문학가동맹 특수위원회 농민문학위원회로 명시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위원회가 조선문학가동맹 결성 당시 조직도에서는 확인되지...
[학술논문] 이태준, 최대다수의 행복을 꿈꾼 민주주의자 - 해방 이후 이태준의 사상과 문학
해방 이후 이태준은 조선문학가동맹 및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간부로 참여하여, ‘인민민주주의’를 모델로 하는 통일국가 건설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당시 이태준을 포함한 중간파 지식인들은 ‘인민민주주의’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수용하였다. 공리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대등한 주권(일대일)을 부여하고, 모든 종류의 사회적 불평등은 ‘불의’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특히 존 스튜어트 밀은 ‘인간으로서의 품위’ 즉 인격의 함양’이 사회전체의 행복을 증진한다고 주장하며, 사회구성원을 교양인으로 양성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밀의 ‘주장’은 조선의 ‘문화주의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