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월북예술인 김태진과 발굴희곡 <임진왜란>(1946) 고찰
...감독, 극작가, 연출가로 활약한 전방위적인 예술가였다. 초기 경향파 영화와 카프 연극운동, 대중연극과 일제 말기 국민연극 등에 관여하며 식민지 문화예술인의 굴절된 삶을 살았고, 해방이후 진보적 연극운동을 하다가 47년에 월북했다. 해방 이전 김태진의 사상적 행보와 활동이력은 해방 이후 조선연극동맹(朝鮮演劇同盟)과 좌익 문화운동의 이념 하에서 ‘민족연극’을 주장했던 그의 연극론과 작품 <임진왜란>을 해석하는 근거들이 되어 준다. 김태진의 <임진왜란>은 당시 좌익연극인들의 신념에 입각하여, 기록과 고증에 따른 ‘사실(事實)’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진보적인 연극이 나아갈 ‘전망’을 제시하는 연극으로 재현되었다. 진보적 리얼리즘을 창작론으로...
[학술논문] 우상에 갇힌 민족연극의 구상 - 김태진의 「리순신 장군」(1948)에 대한 소고
...같은 추모 열풍 속에서 월북 전에는 「이순신」을 무대에 올렸고, 월북 후에는 「리순신 장군」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작가가 삼팔선을 넘어 북한 체제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흥행지향적 연극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던 「이순신」은 훗날 북한에서 획기적 성과작으로 인정받은 「리순신 장군」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곧 「리순신 장군」은 작가가 월북 전 지향했던 민족연극의 관념을 구현한 창작물인 동시에, 북한연극의 역사적 인물 전형화 및 북한체제의 이순신 주조 양상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리순신 장군」에서 이순신의 적대세력으로 부각되는 것은 왕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로, 작가는 외세에 대한 항쟁 대신 조선의 내부 갈등을 극대화시키고, 이 과정에서 봉건적 지배 구조를 전면적으로 비판한다....
[학술논문] 연극/인의 월북: 전시체제의 잉여, 냉전의 체제화
...‘빨갱이’를 등가화하고, 여기에 ‘친일’의 과거를 소환하는 것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해방 직후 전 연극인의 9할을 상회하는 좌파의 기류는 이유 있는 결과였다. 조선연극의 정치경제학적 조건은 여전히 ‘해방’이 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었던 까닭에, 연극전선의 통일을 기하고자 했던 좌파조직운동에 힘입어 민족연극의 건설이라는 명분에 동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대 혹은 공동체적 감각은 바로 일제 말 전시통제가 빚어낸 뜻밖의 결과였다. 무엇보다도 이는 그 이전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좌파이력의 제작진과 대중극단 배우의 결합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조우는 동원정치의 시대에 서로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주는 공동체이자, 해방 이후에는 좌파의 기류를 형성해간 근간이...
[학술논문] 박학의 삶과 영화 활동 연구
...이후의 시기이다. 네 개로 나누어 살핀 박학의 삶을 통해 확인 한 것은 박학의 행적이 1930년대중반 이후 조선연극인들의 진보적 연극운동의 궤적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쿄의 조선예술좌에서 시작되어 해방 후 예술극장으로 이어지는 월북 직전까지그의 연극 활동은 소위 “예술극장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진보적 민족연극 수립”을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연극배우로써의 행적과는 달리 월북이후의 활동은 주로 영화를 통해이루어졌다. 북한 최초의 극영화 <내고향>에 출연한 이후 1960년까지 많은 수의영화에서 주역을 맡았던 그는 1961년 <분계선 마을에서>를 시작으로 영화 연출가로 전향하여 <꽃파는 처녀>를 비롯해 1960∼7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