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박태원의 월북 전후를 통해 본 냉전기 남북의 이순신 표상 연구
...자주적 독립,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남한에서 좌우익이 연합한 통일국가 수립의 열망을 공유했던 박태원이 이순신에 천착하여 반봉건, 반외세를 외쳤다면, 월북 이후에는 변화하는 사회상과 국제정세를 반영해 이순신-임진왜란 서사를 미묘하게 개작하기에 이른다. 염두에 둘 것은 냉전체제하의 남과 북이 임진왜란을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확장하여 인식하는 가운데 이순신은 양측에서 동아시아를 방어한 위인으로 추앙받았다는 점이다. 이순신을 아시아의 영웅으로 배치하고 임진왜란을 반공주의 혹은 반제국주의 전선과 결부짓는 것은 냉전체제의 중심으로 올라서고자 했던 이승만과 김일성 체제의 일종의 담론투쟁이었으며, 박태원의 기나긴 행보 역시 이 같은 거시적 흐름 속에 놓여있었다. 여기서 경중은 있을지언정 월북 전후를 관통하여 이순신-임진왜란을...
[학술논문] 베트남전쟁 시기 북한의 대외정책
...‘반제공동투쟁’을 선도적으로 주장하고 전투병 파병에도 솔선수범했다. 하지만 북한의 기대나 바람과는 달리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은 갈수록 심화됐다. 반대로 일본 군국주의는 완전히 부활하자 1970년대 들어서 북한은 사회주의 진영의 반제공동투쟁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낮추고, 아시아 혁명적 인민들의 반제공동투쟁, 반미반일투쟁을 강하게 촉구했다. 한편 북한은 베트남전쟁 초기 남한에서 반전의식을 매개로 남조선혁명의 기운이 무르익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남한의 반전운동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모험주의적 군사행동 탓에 남조선혁명 가능성이 더욱 낮아지자 박정희 정부와의 대화노선으로 전환했다. 더불어 미군이 1973년 3월 베트남에서 완전 철수하자 7·4남북공동성명의 반외세 조항,...
[학술논문] 북한문학사와 향가
...기반을 둔 집단성, 계급투쟁, 반외세 투쟁’ 등에도 부합되어야 했다. 주체사상의 시기에도 문학사 서술의 기조는 앞 시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체사상 자체가 정치ㆍ외교적 현실의 변화를 반영한 삶의 노선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견지해오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미학의 근본까지 변화시켜야 할 이유는 없었다. 주체미학을 문학사의 강령으로 내세웠음에도 앞 시기의 문학사에 제시한 작품 해석의 경향이 지속된 이유를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향가에 대한 북한문학사들의 해석이 비교적 정돈된 느낌을 주는 것은 향가들이 향찰이라는 우리 독자적 표기체계로 정착된 최초의 노래라는 점에서 부정적인 면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작품에서 읽어낼 만한 계급이나 이념투쟁 혹은 외세와의 투쟁적 요소 등이 적었기 때문이다...
[학위논문] 통일의 원칙으로서 '자주' 이념 형성과정 : 통일독립촉진회 계열(1948-1958)의 지향과 활동을 중심으로
...상황에서는 분단의 제공자인 미. 소와 유엔을 통해서만이 분단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통촉은 남북간 통일문제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반외세민족자주노선 등을 견지하였다. 미군에 의한 독도 민간인 폭격사건에 대해 제헌국회와 함께 반미투쟁을 전개했으며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의 탄압을 규탄하였고 국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둔하고 있는 미소 양군의 철수 투쟁 등을 통해 반외세 민족자주화 운동을 전개하였다.또한 자주적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유엔참가 투쟁을 최초로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48년 12월 제2회 유엔총회에서 한국으로부터 미소 양군의 철퇴를 보장하며 한국의 통일달성 임무‘를 새로운 유엔 한국위원단의 역할로 규정토록 하게 하였다.아울러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미국의 한미행정협정 체결과...
[학술논문] 천도교를 중심으로 본 북한 김일성 개인숭배의 보편성과 특수성
...알바니아, 루마니아, 북한의 경우 그 경향이 심해졌음을 확인했다. 이들 국가는 항일 또는 대독 투쟁이라는 대외항쟁을 개인숭배에 활용한 공통점이 있고, 북한의 경우 이에 더해 천도교라는 민족주의 종교를 적극 활용한 특수성이나타났다. 김일성은 천도교가 하늘이 아니라 사람을 중시한다는 점과 봉건사회제도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진보종교로 봤다. 그는 항일무장투쟁에있어서 천도교와 연대하여 큰 성공을 이루기도 했다. 일인독재를 확립하고 세습독재로 나아가는 데 활용한 주체사상에도 천도교 사상을 원용하기도 했다. 김일성은 천도교를 이용했을 뿐 아니라 천도교의 활동을 자신의 업적으로 왜곡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반봉건과 반외세를 표방하는 천도교는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이론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김일성 본인의 유년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