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특집논문 : 역사인식 속에서의 냉전 - 북한 역사학계의 러시아사 이해
북한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점점 더 축적되고 있지만, 북한 역사학계가 러시아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동안 본격적인 연구가 시도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 특히 한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들은 주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북한 역사학이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에 토대를 두고 성립되었다가 주체사관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기에, 북한 역사학의 토대가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해 스탈린주의 역사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점은 북한 역사학이 표방하고 있는 ‘당성의 원칙’과 ‘역사주의의 원칙’에서 명확히 드러나 있다. 역사의 동력이라는 측면에서 전자는 주관적인 요인을 가리키는 것이고 후자는 객관적인...
[학술논문] 북한 초기 역사학계의 단군신화 인식과 특징 -리상호와 리지린의 연구를 중심으로-
...글은 초기 북한의 역사학계에서 진행된 단군신화를 둘러싼 논의가 어떠한 문제의식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어떠한 결과로 귀결되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북한의 고조선 논쟁은 1959년에서 1963년까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주요 쟁점은 고조선의 위치와 영역에 대한 문제였다. 고조선의 중심지를 요녕설(遼寧說)과 평양설(平壤說)로 보는 견해가 대립하였는데, 요녕설은 주로 역사학자들이 주장하였고 평양설은 고고학자들이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역사학자들의 요녕설이 논쟁의 우위를 차지할 무렵 단군신화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토론을 주도했던 연구자는 요녕설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리상호와 리지린이다. 이들은 단군신화의 역사성을 강조하면서 신화 속에 내재된 역사적 사실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 결과 북한 역사학계는 단군신화가...
[학술논문] 북한 력사과학(1955~2013)의 구성과 특징 연구
한반도 통일 이후 가장 논란이 될 부분은 각기 다른 역사를 어떻게 인정하고, 해석할 것인가이다. 또한 무엇보다 남한 학계에서는 북한 역사학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북한 역사학계의 대표적인 학술지인 『력사과학』을 창간호부터 2013년까지, 게재된 논문을 전수 조사하였다. 이를 시대별, 주제별, 저자별, 정권별로 분류하여 그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전체 3,392편의 논문 중 ‘현대’시대는 약 40%를 차지하였다. 주제별로 보면 ‘정치사’에 관한 비중은 약 34%였다. 저자별로 보면 3편 이상 논문을 게재한 저자는 42%였다. 끝으로 정권별로 보면 김일성 집권 초기에는 시대별, 주제별로 논문의 비중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학술논문] 북한 역사학계의 고조선 종족집단 인식의 변천과 특징
이 글은 북한 역사학계의 고조선 연구 과정에서 제기된 종족집단에 대한 인식의 변천과 그 특징을 살펴 본 글이다. 초기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전통시대와 식민지시대의 고조선 종족집단 연구를 토대로 관련 연구가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 지역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 종족 이름과 거주지역에 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진행되었다. 대표적인 연구자는 리지린과 황철산의 연구를 들 수 있는데, 특히 리지린은 선진시대의 문헌부터 후대의 문헌들까지 섭렵하면서 향후 북한의 고조선 및 종족집단 연구의 기본틀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종족집단에 대한 연구는 이들 집단의 거주 양태를 증명할 수 있는 고고학 방면의 연구들에 의해 보강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 당시의 논점은 선진시대 문헌에서부터 등장하는 예맥을...
[학술논문] 白南雲의 단군신화 인식
...부르주아민족주의자들이 교육이념으로 홍익인간을 차용하려고 할 때에도 일제의 그것과 다름없는 국수적 반동사관이라고 적극적으로 비판하였다. 또한 한국전쟁기 저술로 추정되는 『조선력사』에서도 기존의 단군신화 인식에 근거하였고, 이후 북한학계에서 진행된 단군신화 토론회에서도 자신의 신화 인식을 견지하였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당시 북한 역사학계는 고조선과 단군신화를 연결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백남운의 단군인식은 비판을 받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 김일성에 의한 ‘주체의 제기’라는 배경에서 북한 역사학계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 민족주의 역사학의 관점을 보다 강화시키려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이 과정은 완고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백남운이 북한 역사학계에서 서서히 배제되어가던 정황을 암시한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