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북한 민족주의 역사학의 궤적과 환경
Korean nationalist history had widened the position and faculty as the regime that regulate the traitors to the nation each other in South and North Korea due to the division into 2 regime in 1948 and the parti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1945. The North Korean historical group occupied it first, developed and grown the Korean nationalist history. However, the South Korean historical group didn't
[학술논문] 식민사관에 의한 가야사연구와 그 극복
...이러한 가야사연구는 한·일 양국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의 가야사연구는 임나일본부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위한 근거제시에 불과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한일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것이 가야사의 불행이었다. 가야사연구는 더 이상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사학자들이 내세웠던 ‘일선동조론’이나 북한사학자가 주장하는 ‘분국론’같이 민족적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내셔널리즘이 되어서는 곤란하며 현대적 국가의식의 과잉으로 투영된 고대 한일관계사의 복원도 경계되어야 한다. 호혜평등의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이룩하기 위해서 구시대의 식민사관은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며, 일본은 한국에 대한 객관적 연구를 토대로 한 새로운...
[학술논문] 북한의 건축사학자 리화선과 조선건축사의 출판
이 연구의 목적은 북한의 저명한 건축사학자 리화선의 활동과 그의 『조선건축사』 출판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함이다. 1935년 출생한 리화선은 1960년 평양 건설대학 졸업부터 1993년 그의 사망까지 긴 시간 전통건축에 관한 북한 최고 권위자의 하나로 활동했다. 그는 특히 고구려 도시와 건축에 관한 연구에 크게 기여했으며, 여러 건축 유적의 복원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특히 그의 경력 마지막에 출판한 『조선건축사』는 북한의 시선에서 원시건축에서 현대건축을 시대순으로 정리했으며, 이는 이후 건축사 연구에 의미있는 영향을 남겼다.
[학술논문] 韓㳓劤의 韓國史學 方法論에 대한 고찰
...활약한 대표적 한국사학자 韓㳓劤의 韓國史學에 대한 연구방법론을 추적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해방 후 1세대 韓國史學者로서 實學의 연구, 東學農民蜂起의 究明 및 조선유교정치의 추구 등에 큰 업적을 남긴 한우근이 한국사학 연구방법론과 관련해 발표한 많은 글들을 분석․고찰함으로써 그의 한국사학에 대한 기본적 입장과 史觀에 관련된 연구방법의 문제를 살핀 것이다. 크게 3부문으로 이루어진 이 논문에서 첫번째로 한우근의 학문적 배경을 추적하였다. 그는 일제시기 平南에서 유교적 전통을 지녔던 가문에서 태어났다. 평양과 서울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그는 일본에 유학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東京帝國大學 西洋史學科에 다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대학교 文理科大學 史學科 제1회로 졸업함으로써 韓國史學者로 출발할 수 있었다...
[학술논문]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와 조중고고발굴대 - 顧頡剛의 자료를 중심으로 -
... 대한 보완이 대폭되었음을 확인했다. 리지린이 박사학위논문 작성 이후 조중고고발굴대를 인솔해서 중국을 다시 방문할 것을 대비하여 북경 체재기간에 중국 동북지역의 고고학적 자료 집성에 힘을 기울였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리지린의 모습은 중국문헌을 통해 고조선의 영역을 증명하려는 문헌사학자의 모습만 부각되었다. 하지만, 실제 리지린은 자신의 설은 궁극적으로 고고학적 자료로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에는 한반도 자체의 고고학자료로 당시 헤게모니를 장악하였던 도유호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