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조선녀성』에 나타난 북한의 식생활정책 ―고난의 행군 이후를 중심으로
『조선녀성』은 북한이 정책실현에 있어 여성들에게 효과적으로 선전선동하기 위한 잡지로 식생활 관련 기사를 통해 북한의 식생활정책을 알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수백만의 아사자를 양산하며 심각한 체제 붕괴 위협을 겪은 북한은 식량문제가 체제를 심각하게 위협 할 수 있다는 학습을 하면서 체제유지에 도움을 주는 국가발전전략으로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식생활정책을 펼친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사상’과 ‘실리’로 돌파한 북한은 이후 사회전반에 사상을 중시하면서도 실리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식생활정책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선녀성』을 분석해보면 북한 당국에서는 식생활 개선의 책임을 여성들에게 돌리면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선도하고...
[학술논문] 조선예술영화에 나타난 북한의 식생활정책 연구 -영화 <설풍경>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
북한의 영화를 보면 북한이 주민들의 통치를 위해 실시하고 있는 당 정책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2010년 제작한 영화 <설풍경>은 유능한 요리사라는 주인공을 내세우며 북한이 강성대국 건설에 앞서 진행하고 있는 식생활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북한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강성대국을 건설해 나가기 위해 식량증산과 민족음식의 강조라는 두 가지의 식생활정책을 펴고 있다. 이 중 식량증산정책은 단순히 먹는 문제의 해결 뿐 아니라 동시에 주민들과 지도자 김정일 사이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민족음식을 강조하는 정책 역시 민족성을 강조하고 애국심의 고취를 독려하면서 어떠한 외부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체제 내부의 결속을 도모해 체제의 안정화에 주력하려는...
[학술논문] 체제유지를 위한 북한의 식량정치(food politics)
...건설해나가기 위해 사상교육적인 식생활 정책을 펼치는동시에 실질적인 식량증산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는 등 두 가지 축의 식생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은 식량이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식량난의 원인을 외부와의 갈등에 의한 것으로 선전하면서 식량부족의 상황을 주민들에게 이해시키고주민들의 순응화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정당성을 확보하며 체제를 유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정치는 식량난의 파급효과로주민의 이동이 증대되면서 정보 교류 등이 확대되고 사회통제 기능이 이완되었다는 점이 한계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사회주의체제를고수하고 선군정치의 틀을 계속 이어갈 때 국제사회의 압박이 지속돼 식량부족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북한은 식량을통해서 주민들을 통제해...
[학술논문] 북한 식생활 영역의 용어 연구를 통한 북한 식생활의 이해
본 연구는 북한 식생활 용어들을 모아 정리하여 추출된 용어들을 통해 북한 식생활을 이해하고, 동시에 남한의 중학교 기술・가정교과의 식생활 용어들과 서로 비교하여, 북한 식생활이해도를 높이고자 시도하였다. 본 연구의 자료는 북한용어 사전 2종과 웹사이트 2종을 검색하여 북한식생활과 관련된 용어를 추출하였으며, 남한의 중학교 1학년 기술・가정교과의 식생활영역 단원에서 남한식생활관련 용어를 추출하였다. 분석결과는 1) 분류된 북한의 식생활용어는 식품분야의 용어가 과반 수 이상을 차지하였으며; 2) 또한 북한의 식량사정을 엿볼 수 있는 용어가 추출되었으며; 3) 북한의 식생활정책과 관련하여 식량증산을 위한 작물로 옥수수에 관한 용어가 비교적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고; 4) 북한의 말다듬기 사업을 통해 다듬어진 한자어나...
[학술논문] 옥쌀과 토끼―1970년대 북한의 ‘먹는 문제’와 국가의 식생활 개입
...풀 먹는 집짐승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것 중 하나가 토끼였는데, 이는 토끼가 번식력이 매우 높고 빨리 크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옥쌀과 토끼고기 먹기 캠페인은 1970년대 북한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식생활 정책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선전에도 인민들의 옥쌀에 대한 인식이나 토끼고기에 대한 생활 속 수용 양상에는 도농간 차이를 비롯해 상당한 균열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1970년대 국가 주도 대용식으로서 옥쌀과 토끼고기가 선택되고 강제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인민들의 반응과 실제 수용은 어떠했는지를 고찰한다. 이어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던 ‘고난의 행군’ 이후 대중화되어 북한 인민의 식생활에 자리잡은 옥쌀과 토끼요리가 갖는 의미를 논의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