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54년 제네바정치회담과 외국군 철수 의제
...없었다. 따라서 참가주체들의 타협 의지와 해결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치회담을 통한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웠다. 명목과 달리 정치회담은 이미 결정된 분단을 정착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정치회담에서 외국군 철수 의제가 다루어지는 시기에 전후 동맹구조가 형성되었다. 남한에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그에 근거한 미군 주둔이 결정되었고, 한미동맹이 형성되었다. 외국군 철수를 주장했던 북한 역시 전후에도 중국군이 잔류하였고, 1956년 중국군이 완전 철수한 후에도 1960년대 초 북-중간, 북-소간 동맹조약을 체결하여 동맹구조를 강화했다. 결국 정치회담의 개최 목적인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통일이 아니라 분단구조의 ‘평화로운 관리’를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학술논문] 1958년, 위기의 북한과 중국의 선택: 북한 주둔 중국군 철수의 원인과 배경
북한에 주둔 중이던 중국군이 철수한 1958년부터 북·중간 안보조약이 체결되는 1961년까지 약 3년의 북한 안보공백기는 명쾌하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불균형한 안보상황을 초래할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에서 왜 중국은 철군을 감행했고, 북한은 이에 동의했던 것일까? 1958년을 전후로 중국이 처한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철군의 주요한 원인은 중국 측에 있었다. 안보적 차원에서는 타이완해협 위기로 촉발된 중국의 불안정한 안보환경이 하나의 원인이었으며, 경제적 차원에서는 북한 주둔의 경제적 부담과 대약진운동 등 국내 경제개발을 위한 국력집중의 필요성 또한 중요한 원인이었다. 한편, 북한이 안보적 위기감에도 불구하고 중국군의 철수를 용인할 수 있었던 것은 주둔과 철군 사이에 안보적 효용 차이가 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