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6.25 전쟁과 한국군의 국방안보태세 발전에 관한 소고
금년 들어 만 60주년이 되는 6.25전쟁은 북한 공산집단에 의해 야기되어 엄청난 인적ㆍ물적 손실과 희생을 초래한 동족상잔의 전쟁으로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불의의 전쟁’으로 규정되어 왔다. 여기에 논자는 이러한 성격의 6.25 전쟁을 현대 분쟁이론에서 매우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는 ‘나이(Joseph Nyes)’ 교수의 촉발적 전쟁원인의 세 가지 차원, 즉 전쟁의 구조적 차원과 국내 사회 정치적 차원 및 국제사회 지도자 각 개인의 역할 차원을 분석요인으로 활용하여 6.25 전쟁간 나타난 우리의 군사 안보적 실책을 고찰해 보고, 6.25 전쟁이후에도 계속되어온 북한의 전쟁 준비, 즉 4대 군사노선으로 지칭되고 있는 자력방위정책과 군사전략, 선군정치를 통한 강성대국 건설과 핵미사일 개발 등에 나타난 북한의...
[학술논문] 이태준, 최대다수의 행복을 꿈꾼 민주주의자 - 해방 이후 이태준의 사상과 문학
...이후 이태준은 조선문학가동맹 및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간부로 참여하여, ‘인민민주주의’를 모델로 하는 통일국가 건설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당시 이태준을 포함한 중간파 지식인들은 ‘인민민주주의’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수용하였다. 공리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대등한 주권(일대일)을 부여하고, 모든 종류의 사회적 불평등은 ‘불의’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특히 존 스튜어트 밀은 ‘인간으로서의 품위’ 즉 인격의 함양’이 사회전체의 행복을 증진한다고 주장하며, 사회구성원을 교양인으로 양성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밀의 ‘주장’은 조선의 ‘문화주의자’에게 선택적으로 수용되었으며, ‘민주주의’는 그들의 중요한 정치적 지향점이 되었고, 해방 이후 문화주의자들이 ‘인민 민주주의’를 수용할 수 있는...
[학술논문] 건국초기(1944-1965) "인민일보"를 통해 본 중국 정부의 한국 인식
...자본의 확장에 대해서도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 민중의 저항운동 보도는 초기유격대의 무장투쟁에서 점차 독재 반대 시위와 주한미군 폭행에 항의하고철수를 요구하는 등의 방향으로 옮겨갔다. 특히 4・19의거을 전후해 대규모민주화 운동에 관한 다양한 기사 및 중국 각계의 성원과 지지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 후에도 생존권 요구 투쟁과 반미 반정부 시위 기사를 통해한국인의 불의에 저항하는 이미지를 계속 전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기 중국 정부의 한국 인식은 한국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민중에 대한 동정적인 인식이 병존하고 있었다. 이는 아마도 당시 중국공산당의 통일전선 전술과 세계혁명 전략에다,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부각하고 한국전쟁 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명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위논문] 북한이탈주민의 6.25전쟁에 관한 인식 : 입남후 변화와 정책적 제언을 중심으로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발발한 지 62년이 지났다. 6·25전쟁은 반만년 한민족사에 가장 큰 재앙을 남긴 동족상잔으로 기록되었다. 일제의 식민지 기반에서 갓 해방되었던 남과 북은 잿더미로 변했고, 청소한 사회기반 시설은 여지없이 파괴됐다.북한의 불의의 침공으로 시작된 6·25전쟁에는 남한의 자유수호를 위해 16개국 유엔군이 투입됐고, 공산진영을 보전하기 위해 중공군이 북한 측에 가세함으로써, 한반도는 외세의 이전투구(泥田鬪狗)장으로 변했다. 정전협정으로 말미암아 미완으로 종결된 6·25전쟁은 남북대결과 반목의 장이 되어버렸다. 현재도 남북 사이에는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국지전이 지속되고 있으며, 결과 2010년 11월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로 대한민국의 영토가 공격받는 비극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