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러시아 사할린 한인 이주의 특성과 인구발달
...세계사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할린 한인들의 이주와 정착은 특별한 역사와 독특한 성격을 갖는다. 사할린은 1905년 이후 남과 북으로 분할되어 러시아와 일본이 점유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사할린 한인들이 2차세계대전 말기에 강제로 이주되어 일본의 점유하에 있는 남부 사할린에서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남부 사할린을 소련이 점유하게 되었고, 사할린의 한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 없는 이주자가 되었다. 그후 소련의 대륙지역에 살던 한인들과, 북한에서 온 노동자들이 사할린의 한인인구에 더해졌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수백명의 기업인들과 선교사들, 학생들이 사할린으로 왔고, 수백명의 북한 건설노동자들과 상업활동을 위해 중국북동지역에서 온 한인들도 사할린에 거주한다.
[학술논문]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전후 강제동원 피해의 범위와 보상논리 변화
...제외되었다. 한편, 피징용 사망피해는 속지주의 원칙이 아니라, 유족의 국적주의를 내세웠다. 즉, 피징용자 피해지역은 일본과 한국 뿐 아니라, 사할린, 남양지역, 북한, 중국 등에서의 피해도 한국 국적을 지닌 유족이 신고 가능하게 했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법」이 1970년대의 대일민간청구권보상체제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 지원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내동원이나 국외동원으로 나눈 것은 적어도 이 「대일민간청구권보상법」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사할린 한인의 경우도 미귀환의 문제는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사망자에 대한 보상 및 미불금 관련 보상에 대한 청구권은 역시 당시에 해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학술논문] 접경지대에 남겨진 조선어―소비에트 시대 사할린 코리언들의 언어 문제
...한국전쟁 이후에는 전후복구에 성공한 북한으로의 귀환도 어려워졌다. 사할린 코리언사회가 북한의 탈소련화에 따라 북소 접경지역으로도 여겨졌기 때문이다. 소련은 1963년에 민족어 교육을 폐지함으로써 사할린 코리언에 대한 통합 정책을 실시했다. 이는 소련계 유대인들의 이디시어 교육이 소련 밖의 모국인 이스라엘로의 귀환 열망의 상징으로 여겨져 폐지되었던 것과 유사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농촌인구가 많은 중앙아시아 코리언들과는 달리, 도시 거주율이 높아 민족공동체를 이루기 어려웠던 사할린 코리언사회는 급속히 소련 사회로 언어적으로 통합되어갔다. 그런데 소련 붕괴와 함께 1990년대에 한소수교가 이루어지자, 이들은 조국과의 연결고리로 이번에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익히며 남북의 접경지대로서의 사할린을 살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