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조선후기 조령산성의 운영과 수성절목
...예로부터 입보(入保)하기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내외 2중의 산성을 형성하였다. 경상북도 북부의 낙동강 발원지 부군 고을들의 세금이 이 고개를 통해 북쪽으로 고개를 넘어 한강 유역의 큰 도시인 충주에 이르러 창고에 보관되었다가 도성(都城)으로 운반되었으므로, 세곡운반 루트의 길목을 지키는 교통로를 지키는 곳이었다. 이러한 산성의 구조는 내외 이중의 성벽을 가진 산성의 구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령산성이 자리한 고을인 문경현은 성 밖의 관아에 수령이 있고, 항시 산성에 머무르는 별장에게 평상시 산성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이들 두 관리는 산성을 지키는 연습과 실제 산성에서 방어하는 경우 각각 수성장과 수성중군이 되어 휘하 관속과 군병 및 주민들을 통할하도록 절목에 규정되었다. 조령산성을 방어하는 군사력을...
[학술논문] 최근 북한 고고학계의 고구려 연구 동향: 『조선고고연구』를 중심으로
...각각 황룡산성과 대현산성의 성주의 무덤으로 파악한 것 등이 있다. 그 외 4세기 이전 시기에 해당하는 고구려 고분이 평양에 존재한다는 여러 연구가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보고된 평양 지역의 낙랑 고분(목곽묘, 전실분 등)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편, 성곽에 대해서는 평양 일대의 고구려 성곽 유적 아래에서 고조선 시기의 토축 성벽이 발견되었다는 여러 보고가 있는데, 고고학적인 근거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아 문제가 있다. 또 장수산성을 남평양으로 비정하는 연구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남한의 고구려 성과 성 유적에서 출토된 기와나 토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도 있다. 이상에서 검토한 북한 고고학계에서의 고구려 연구의 특징은, 첫 번째로 기존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학술논문] ‘平壤箕城圖’를 통해 본 平壤城의 構造와 現況
...기성도 병풍에 대한 수요층이 확대되면서, 평양이라는 주변 경관과 기록 혹은 기념을 목적으로 한 회화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 본고에서는 ‘平壤箕城圖’에 투영된 조선시대 후기 평양의 실제 모습을 통해 부성(내성), 중성, 외성, 그리고 북성으로 구분하여 현황과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검토와 북한의 고고학 자료를 비교한 결과, 외성 성벽의 구조에 대해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북한 측에서는 평양성은 모두 석축으로 되었다고 하나, 문헌과 지도에서는 토성으로 축조된 것으로 기록된 사실과 대비된다. 또한 북성의 우마성은 고려 대몽항쟁기의 甬道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성의 방어기능을 높이기 위한 옹성 포대의 성곽으로 변화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하였다. 이 연구는 조선시대 평양성의 현황과...
[학술논문] 북한산성과 행궁지의 조사 및 연구성과 재고
...거두었고, 이는 문헌자료에 기록된 규모와 구조, 축조 및 운영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를 적지 않게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북한산성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대개는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축성 목적과 과정, 남아 있는 현상에 대하여 다룬 예가 대부분이다. 그러다가 2013년부터 북한산성 성벽과 성랑지, 치성, 돈대, 수구에 대하여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행되었고, 중흥산성의 성벽도 확인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2010년 이후부터 심포지엄이나 학술세미나가 7차례 정도 열리면서 점차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행궁지 조사와 연구는 북한산성과 함께 다루어져 왔는데, 2009년 행궁지 종합정비기본계획이 수립되었고, 그에 따라 2011년부터 정밀조사가 진행되었다...
[학술논문] 平壤城 發掘의 成果와 課題
...파괴된 외성 서남쪽 모서리 성벽 단면이 보고되었다. 이상의 조사는 개발공사에 수반된 긴급조사로서 조사 기간과 방법 등 매우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평양성 내부의 건물지에 대한 유일한 조사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를 가진다. 1950년대 이후 시가지 개발과정에서 일부 긴급조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보고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1993년에는 중성과 외성 일부 지점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고구려 이전 고조선 시기의 유적을 찾는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2011년에도 외성 성벽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중성과 외성의 성벽은 국내성이나 남한지역의 고구려 성과 같은 토심석축기법으로 축조된 것이 밝혀지는 등 새로운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성벽 단면도 등 제시된 자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