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직접 발품, 손품, 입품을 팔아 완성한 현장 중심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행정구역 변경으로 사라진 지명과 도시 개발로 변모한 산세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당시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현장 스케치와 사진을 담아냈다. 또한 문중 문헌, 지역 역사관, 기념관 자료는 물론, 한국 육군본부 전사연구소와 미 워싱턴 육군본부 전사연구소의 자료까지 꼼꼼히 살피고 향토사학가 및 관련 연구자들과의 심층 대화를 통해 입체적인 시각을 더했다. 『6·25전쟁의 아마겟돈 전투』는 칠곡의 향토해설사와 지역 주민들에게는 올바른 역사 인식을, 전후세대 독자들에게는 전쟁의 참상과 역사의 교훈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사회/문화]
...공작을 펼치려 하고, 설쌤 일행은 이들의 훼방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 일인지를 알게 됩니다.
설쌤은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줍니다. 첫째 민족사적 이유, 둘째 인도주의적 이유, 셋째 경제적 이유입니다. 민족사적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의 문을 열고 신채호 선생을 찾아간 설쌤 일행은 신채호 선생을 통해 ‘민족’이란 개념의 중요성을 배우게 됩니다. 인도주의적 이유로 설쌤은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마지막 경제적 이유로 설쌤은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분단이 됐지만, 30여 년 전에 통일을 이룬 독일을 살펴보며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학술논문] 朝鮮歷史編纂委員會의 설립과 북한 고조선 연구의 개시(1947~1950)
...1949년 홍기문에 이어 1950년 정세호ㆍ정현에 의해 고조선 관련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홍기문은 일제시기 일본인 역사학자의 조선사 타율성론을 비판하고자 낙랑군과 고조선의 위치를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정세호와 정현은 문헌을 중심으로 고조선과 낙랑군의 위치가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요령지역에 있었다고 강조하였다. 홍기문ㆍ정세호ㆍ정현은 모두 김두봉과 연관되었는데, 비록 입장의 차이는 있었지만 신채호의 고조선 연구를 참고ㆍ수용했다. 향후 북한학계는 고조선의 위치를 요령지역에 비정하는 것을 공식적인 입장으로 채택했다. 또한 신채호의 한국고대사 연구를 수용했다. 이 점에서 『력사제문제』 수록 고조선 관련 연구는 북학학계의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연구사적 의의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학술논문] 申采浩 前後三韓說의 의의
신채호는 단군조선이 신조선(眞朝鮮) 곧 진한, 불조선(番朝鮮) 곧 변한, 말조선(莫朝鮮) 곧 마한으로 나누어졌고, 이들 일부가 남하하여 한강 이남의 삼한을 형성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전후삼한설이라고 하는데, 일제시기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해방 이후 남북한 학계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 글은 신채호가 전후삼한설을 구상하게 된 경위와 의의를 검토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신채호는 1908년 발표한 『독사신론』에서 부여족이 남하하여 한강 이남의 토족(土族)을 정복 혹은 흡수하여 백제, 신라, 가야를 건설하였다고 보았다. 이는 전삼한의 주민이 남하하여 후삼한을 건설하였다는 논리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전후삼한설의 원형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 실학자...
[학술논문] 「꿈하늘」의 새로운 읽기-역사담론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여전히 개정판 『단재신채호전집』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북한의 『룡과 룡의 대격전』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텍스트가 삭제 및 탈락, 그리고 재구성되기도 했다. 그것은 신채호의 유고를 필사한 『신채호문학유고선집』과 비교해보면 자세히 드러난다. 「꿈하늘」은 처음 안함광, 주룡걸 등 북한의 편집자들이 역사담론을 서사에 불필요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탈락시켰다. 그러나 연구자들도 탈락된 부분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탈락된 것은 군더더기이거나 없어도 무방한 부분인가? 탈락 부분에 대한 연구, 또는 복원의 필요성은 없는가? 본고에서는 단재의 유고 「꿈하늘」에서 탈락된 부분을 검토하여 「꿈하늘」을 새롭게 읽어보았다. 「꿈하늘」은 1916년 씌어진 이후 묻혀...
[학술논문] 北韓 소장 미공개 申采浩 遺稿의 현황과 성격
1928년 신채호가 일제에 피체되어 수감된 후, 그의 많은 유고는 천진에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던 박용태에게 일시 맡겨졌다. 그런데 이후 신채호 유고는 해방 후 북경 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되어, 현재 평양 인민대학습당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간 남한에서 신채호자료가 집성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신채호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전해진 일부 자료를 제외하고는 수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신채호 전집 발간을 추진하던 2006년, 신채호 유고 수집을 위한 북한과의 접촉과정에서 유고 목록과 일부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북한이 소장하고 있는 신채로 유고가 최소 53건 4,979쪽 이상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북한과의 접촉과정과...
[학술논문] 白南雲의 단군신화 인식
백남운은 식민지시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관점에서 『조선사회경제사』와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저술하여 식민주의 사관을 극복하고 한국사의 보편적 발전 과정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특히 고대사의 영역을 다룬 『조선사회경제사』의 緖論에서 「단군신화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일본인 연구자들의 단군 인식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최남선, 신채호 등 민족주의 역사가들의 단군신화 해석에 대한 비판이 중점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당시는 학술계에서 조선학운동의 흐름이 가시화되던 시기였으며, 이미 단군이 조선의 역사와 문화의 기원이자 상징으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획득하고 있었다.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 조선사를 체계화시키려 노력한 백남운의 관점에서는 단군으로부터 기원하고 상징되는 조선 민족의 형상화는 ‘하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