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桓雄天王과 檀君王儉에 대한 역사민속학적 고찰
역사학에서는 고조선을 건국한 건국자 단군에 중점을 두어 단군신화라고 표현하며, 민속에서는 농경생활을 시작한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 세 존재 모두에게 숭배를 하고 가신으로서 모셔 의례를 행하고 있다. 역사학에서는 국가에 관심을 갖고 건국신화를 중요시한 것이며, 민속에서는 가정에 관심을 갖고 가신신앙으로 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내용은 분명히 환웅이 주인공이며 농경생활에 대한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단군의 존재와 건국에 대한 내용은 그 결과로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단계에서는 환웅이 신화적 존재이므로 환웅신화, 그리고 단군은 인간적 존재로서 기록되어 있으므로 단군왕검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객관적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왕운기』에서 제왕들의
[학술논문] 황철산의 역사민속학연구-사학사상의 ‘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
황철산은 북한과 남한 모두에게 기억 속에서 사라진 역사민속학자이다. ‘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을 주창하는 한국역사민속학회의 입장에서도 황철산은 잘 모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북한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실 실장으로서 북한민속학의 토대를 구축한 인물이다. 더욱이 그의 연구방법론은 철저하게 역사민속학의 입장에 근거하였다. 북한의 역사민속학에 대한 본질적 연구가 미진한 상태에서 북한민속학의 사학사적 궤적을 옳게 알아채리는 연구자가 오늘날에도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황철산은 민속학방법론,역사과학에서의 민속학의 위상, 물질 생산민속, 종족문제 해결에서 민속학이 개입하는 위상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업적을 냈다. 그의 역사민속학을 통하여 남북의 통합된 역사민속학서술을 가능케할 것이다.
[학술논문] 韓國歷史民俗學의 모색과 궤적
... 해당되는 통시대적인 민속도 있지만, 일정한 시기에 발현된 단기적인 민속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역사민속학의 발전과정에서 북한의 역사민속학이 중요하다. 북한민속학은 출발 단계에서부터 역사과학으로 위치지워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한 통합에서 역사민속학이 일정한 역할을 해낼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문헌과 현장 구술의 제 관계도 주목하였다. 역사민속학은 쓰여진 역사와 쓰여지지 아니한 역사의 간극을 좁히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문헌과 현장 구술이 상호 결합되고 상호 보완된다면 역사연구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학술논문] 한국전쟁 직후 남북한 전통음악연구 배경과 양상
...따라서 궁중음악 중심의 연구가 토대가 되었고 민속악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향을 띠었다. 이런 연구방법을 후대에 실증사학(實證史學)적 방법론이라고 하여 긍정적이라고 평가되고 있지만, 그때까지는 고고학이나 역사학 · 민속학 등이 적절히 결합되지 못한 한계를 가졌다. 북한은 ‘과학원’(科學院)의 연구정책과 관련하여 역사민속학(歷史民俗學)적 방법에 의한 고분벽화(古墳壁畵)의 악기와 연주도(演奏圖) 분석을 통해 고대음악사를 해명하려했던 경향이 두두러졌음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악학궤범』(樂學軌範) 영인과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초기에 있었던 고악보에 대한 주제보다는 현장연구에 바탕을 둔 창극(唱劇)과 민요 등 민속악에 큰 집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학술논문] 1950년대 북한에서 전개된 김일출의 조선민속학 연구에 대한 고찰
...보았다. 이에 대해 본문에서는 김일출의 탈놀이 및 고대사 연구가 역사민속학의 일환에서 수행된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김일출이 1953년경부터 과학원 민속학연구실 연구사로 근무하며 역사민속학 연구를 마무리하고, 1957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농촌의 변화를 기술하는 ‘현재를 다루는 민속학’(현재민속학)을 모색하였음을 처음으로 밝혔다. 역사민속학과 현재민속학은 서로 보완하면서 발전하는 성격의 것이었다. 김일출은 역사민속학이란 과거 인민들의 문화, 풍습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현재의 그것과의 연관성을 구명하려고 노력하였다. 1957년 이후 김일출의 현재민속학은 변화하는 물질적, 정신적 변화의 실상을 포착함으로써, 역사민속학과의 협업(協業)을 통해 그 비판적 계승을 강조하며 그 실상을 기술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