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발해성곽의 구조와 형식에 대한 연구
...주, 현의 소재지나 방어시설 등에 대치되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발해는 다민족 국가이므로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성곽 건축에도 반영되었다. 방형과 장방형의 정형화된 평면형태, 남쪽에 설치된 문, 토축 구조, 방어시설이 거의 없는 것, 장안성의 형태를 모방한 것, 내성, 궁전 건물의 위치 등은 중국 건축전통의 영향을 받고, 석축과 토석혼축, 치·각루·옹성 등의 방어시설과 산성의 축조 등은 고구려 성곽건축의 영향으로 이해되며, 이후 발해만의 특징으로변모하여 토석혼축성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말갈의 전통은 토축, 산성, 완성되지 않은 성벽 등에서 그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상당 수 성곽에서는 발해 이후 시기인 요대와 금대에 개축되면서 치, 옹성, 각루가 설치된 것이 확인된다.
[학술논문] ‘平壤箕城圖’를 통해 본 平壤城의 構造와 現況
...‘平壤箕城圖’에 투영된 조선시대 후기 평양의 실제 모습을 통해 부성(내성), 중성, 외성, 그리고 북성으로 구분하여 현황과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검토와 북한의 고고학 자료를 비교한 결과, 외성 성벽의 구조에 대해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북한 측에서는 평양성은 모두 석축으로 되었다고 하나, 문헌과 지도에서는 토성으로 축조된 것으로 기록된 사실과 대비된다. 또한 북성의 우마성은 고려 대몽항쟁기의 甬道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성의 방어기능을 높이기 위한 옹성 포대의 성곽으로 변화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하였다. 이 연구는 조선시대 평양성의 현황과 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서경성, 668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항전하였던 평양성의 모습을 되짚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