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내부에서 ‘그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몸소 겪은 사람의 시선에서 서술되므로 외부인의 추론과는 차원이 다른 밀도를 지닌다. 독자는 사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체제 안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감각을 경험하게 되며, 북한 사회가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지를 체감하게 된다.
이 책은 사실로서의 증거와 감정의 울림을 동시에 지닌다. 또한 감옥과 심문, 억류와 수색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문장을 이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자유의 증거이자 저항의 행위가 된다. 이 책이 단지 ‘북한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분노만을 불러일으키는 고발서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진실을 받아들이고, 그 진실에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지를...
[정치/군사]
해방의 격랑 속에서 갈라진 한반도의 운명
20세기는 공산주의와 함께 막을 올렸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조선에서도 큰 울림을 남겼다. 평등한 세상, 모두가 잘사는 사회라는 공산주의의 약속은 억압받던 이들에게 달콤한 희망으로 다가왔다. 박헌영과 김단야는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고, 여운형과 김원봉 같은 독립운동가들까지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꿈꿨던 이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실의 공산주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워버리고, 일당 독재와 억압으로 변질되어 갔다.
한국에서 공산주의는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민족 저항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는 무기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정치/군사]
...기록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깊은 사명감에서 시작된 이 책은, 단순한 전쟁사가 아닌 ‘죽은 앞이 산 뒤를 살린다(死先生後)’는 철학 아래 호국영령과 민주화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이 오늘날 우리의 자유와 번영을 지탱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칠곡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다부동 전투를 재조명하며, 잊혀가는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되살려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이 책은 학술적인 논증을 넘어, 저자들이 직접 발품, 손품, 입품을 팔아 완성한 현장 중심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행정구역 변경으로 사라진 지명과 도시 개발로 변모한 산세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당시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현장 스케치와 사진을 담아냈다. 또한 문중 문헌, 지역 역사관, 기념관 자료는 물론, 한국...
[경제/과학]
...북한 언어의 억양과 사투리를 인지한다고 북한 경제·금융을 이해 할 수는 없다.
남한의 금융을 이해한다고 해서 북한 금융을 이해한다는 실수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금융기관의 북한진출을 위해서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누가? 어떻게? 누구에게? 교육하고 교육받을 것 인가?
당연한 한목소리의 큰 울림보다는 한권의 책이 남북한 금융 통합의 첫발을
내딛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먼저 금융을 이해하여야 상호 용어도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의 경제·금융 언어를 실무경험으로 만들어낸 이 책은 남북 통합을 위한 경제·금융 상호 자기학습서라고 할 수 있다.
남과 북의 각자의 표현방식으로...
[사회/문화]
...자료를 접할 때마다 직접 현장을 찾은 그는 현재 경복궁역 7번 출구가 한성임시정부 첫 회합터였고, 낙원동의 돼지머리 고깃집들이 화요회 회관 자리임을 눈으로 확인했다. 또한 조선공산당 창당 당시 김찬이 살던 하숙집 자리는 3개월 만에 찾아냈고, 한성임시정부 수립 당시 김사국이 살던 하숙집을 찾는 데는 1개월이 걸렸다. 이렇게 저자가 발로 찾아서 확인한 당시의 흔적들은 책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책을 읽다 보면, 1925년 4월의 어느 날 하숙집을 나서 조선공산당 창당대회 장소로 향하는 김찬과 김재봉의 긴장된 발걸음과 그들이 보던 거리의 풍경이 눈앞에 보일 듯하고, 북풍회관에 모인 사람들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귓가에 들릴 듯하다. 그런 생생한 역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크나큰 울림을 주고 있다.
[학술논문] ‘실학實學’ 개념의 적합성 또는 부적합성에 관한 연구
...대체로 1930년대의 일이다. 일제 강점기의 상황에서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등과 같은 조선학운동의 선구자들은 정약용의 학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실학이라는 용어를 등장시켰다. 이는 주권을 빼앗긴 울분과 근대성에 대한 열패감을 극복하고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려는 메시아적 몸짓이었다. 시세가 급박한 터라 충분한 숙고와 성찰의 소산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울림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마련한 실학의 개념이 이후의 실학논의를 불러일으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논의를 거칠수록 실학의 개념은 구체화되고 탄탄해졌다. 남과 북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도 이 개념을 수용하면서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독자적 실학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양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실학의 개념이 확정적일 수 없는 까닭에 이에 대한...
[학술논문] 1950~60년대 북한의 민족 악기 개량과 민족 관현악 편성
...위해 많은 수의 악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편성하였으며, 이러한 대민족관현악편성은 1970년대로 이어졌다. 1970년대에는 이동이 편하고 빠른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해금을 주선율악기로 한 악기편성과 함께 해금악기군을 음역대별로 배치하였고, 금관악기는 배합관현악으로 대체되었다. 1960년대 민족 기악의 발전은 인적자원과 민족 악기 개량을 통한 물적기반을 확보한 상태에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해 냄으로써 속도를 냈다. 그러나 가사가 없는 기악음악에서 역동하는 천리마운동의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민족 기악 창작 방법론은 민족 악기를 새롭게 개량하거나 제작하게 하였으며, 이 악기들로 훌륭한 울림을 구현해 낼 수 있는 민족 관현악 편성을 연구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학술논문] 1960년대 초 북한 문학비평의 수정주의 비판론-김창석 『미학개론』과 연극 <소문 없이 큰일 했네> 논쟁-
이 글은 북한문학비평사 기획 연구의 일환으로, 1960년대 초 북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문학예술의 ‘수정주의 비판’론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수정주의 비판론은 소련의 스탈린 독재에 동참하지 않은 유고슬라비아의 독자노선을 비판했던 정치 투쟁에서 비롯되었다. 문예 분야에서의 수정주의 비판은 김창석의 『미학개론』(1959)과 경희극 <소문 없이 큰일 했네>(1962)가 천리마운동이 활발하던 북한 현실을 왜곡했다고 비판받았던 미학 논쟁이다. 이 연극은 조선작가동맹 극문학분과와 조선연극인동맹의 토론회와 후속 평론에서 집중적으로 비판되었다. 즉, 풍자 경희극을 빙자하여 천리마운동의 시대정신을 비방하고 서구식 극작법으로 사상적 미학적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이는 연극을 지도한 김창석과
[학술논문] 북한의 전자결제 현황과 제도변화 연구 - 북한주민의 휴대전화 이용 및 전자결제 실태를 중심으로 -
...미친 영향과 변화를 분석하고, 향후 방향을 고찰하는데 목적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금융과 ICT와의 결합은 지급결제의 기술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에도 이와 같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화폐개혁 이후 북한당국은 전자결제카드를 발행하며 유휴화폐를 흡수하려 했고, 북한주민들은 은행에 대한 불신으로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의 요금체계와 연동된 음성통화시간 이관 기능을 활용해 ‘전화돈’을 만들어 활용했다. 북한당국은 이후 정식으로 크레디트 개념의 ‘전화돈’을 요금체계에 차용했고 이어 모바일 전용 전자결제 어플리케이션 <울림>을 출시했다. 북한에서 나타나는 전자결제의 현황과 제도의 변화를 통해 향후 북한의 금융정보화를 전망해본다.
[학술논문] 황순원 소설의 설화성과 월남민의식 연구 -「땅울림」을 중심으로-
황순원은 현대의 금기설화를 만들기 위해 「땅울림」을 창작하게 되었다고 작품에 밝히고 있다. 황순원은 전전세대(戰前世代) 특유의 역사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이 우리 민족의 삶을 해체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형상화하기 위해 금기설화를 창작하고자 한다. 현대 금기설화로 명명한 「땅울림」에는 세 가지의 금기설화(중국, 일본, 한국)와 두 가지의 전쟁(태평양, 한국)과 관련된 삽화를 수용하고 있다. 황순원은 작품에 수용된 금기설화와 삽화를 중심으로 소설을 창작하는 과정을 전면적으로 노출하고 있어서, 작가의 창작방법을 살펴볼 수 있다. 황순원은 해방기에 월남한 작가이다. 그는 이북에서 지주계급이었기 때문에 자진해서 월남한 이후에, 오히려 좌파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행보를 보인다. 이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