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이런 시기에 변화의 방향과 양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타성에 젖어 있으면 큰 시련을 겪게 됩니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여진족은 부족 통합을 거듭하다 마침에 나라를 세우고 명나라에 선전포고할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지배층은 몰락하는 명나라와 떠오르는 청나라의 객관 정세를 전혀 읽지 못하고 주자학(유교)에 사로잡혀 명나라만 숭상했습니다. 주변 정세의 변화를 전혀 읽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병자호란이 터지고 수많은 병사와 백성이 청나라군에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전쟁 결과 조선은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되었으며 수십만의 백성이 청나라에 끌려가는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국제질서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이념에만 사로잡혀 있다가는 나라가...
[통일/남북관계]
...이루는 내적통합에 남북한 사회통합의 목적이 있다.
이 책은 한국사상사의 통합이론과 서양의 주요 통합이론, 사례를 살펴보며 장단점과 기여점, 한계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장점을 수용하면서도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한국 고유의 사상과 이론으로부터 통일과 남북한 통합방안을 찾고자 했다.
불교의 화엄사상, 유교의 성리사상, 기독교의 대공사상에서 본래의 좋은 상태 혹은 참 좋음을 되찾거나 회복한 상태를 의미하는 ‘대공 가치’라는 한국적 가치를 발견하고, 대공 가치와 공적 방식에 따라 다양한 작은 일들이 하나의 큰 일로 통일되어 가는 방법을 요체로 하는 통일 이념으로써 대공민주주의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대공민주주의의 만남, 나눔, 모음의 틀에...
[정치/군사]
...20대에는 주사파학생운동의 리더로 안기부에서 죽음을 각오한 묵비투쟁을 했다. 40대에는 한미FTA반대 광우병선동 촛불시위에 맞서 ‘바른FTA실현 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으로서 과거 운동권동료들과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은 홀로 산행명상을 500여회 하면서 통일문제 해법을 고민해왔는데, 그의 결론이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4대 종교 회통사상을 제기한 탄허 스님의 생각과 거의 유사함을 깨닫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저자는 근대보수주의 정치사상의 원조로 일컫는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 성찰’을 중심으로한 우파적 근대화의 길과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중심으로 한 좌파적 근대화의 길을...
[학술논문] 백석 시에 나타난 ‘마음’의 형상화 방식과 의미
...백석시에서는 ‘마음’을 수식하는 형용사들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결국 자기 성찰적 태도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 논문은 백석 시에 쓰인 ‘마음’이라는 시어와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들의 용법과 의미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백석 시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동양 문화권에서 ‘마음’을 이해해 온 방식, 특히 유교의 심학에서‘心’을 이해한 과정과의 관련 속에서 백석의 ‘마음’을 규명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양철학적 마음 이해의 이론적 체계를 현대의 인문학적맥락 속에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최근의 통합인문학적 연구 동향은 이논문의 문제의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학술논문] 19세기 말 평안북도 구성군 家戶의 구성과 거주 양태
...구성되어 있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가옥의 평균 규모가 크고, 1인당 평균 거주 면적이 넓은 동네는 대부분 동성 촌락이었다는 것이다. 내동면에 동성 촌락이 많았던 것은 이 지역이 유교적 성향이 강하였기 때문이었다. 내동면 호적에서 가족은 철저히 부계 직계 친족으로 구성되었고, 딸들은 잠재적 출가외인으로 여겨 일체 기재하지 않았다. 시집온 여성들의 성씨나 외조의 본관도 기재하지 않음으로서, 가족 구성에서 여성을 배제하거나 가급적 평가 절하하려고 하였다. 호주의 직업은 모두 ‘農’으로, 祖와 父는 모두 ‘學生’이나 ‘幼學’으로 기재하였다. 내동면은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지역이었고, 이러한 지역적 특성이 내동면 호적의 보수성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학술논문] 동북아시아 사회·정치철학의 특징과 현실 - 한국·중국·일본을 중심으로 -
...통해 한국의 후진성과 일제 강점의 정당성 등 역사왜곡을 바로 잡으려 하였다. 한편, 약 100여 일에 가까운 촛불시위와 네티즌들의 대정부 비판 글에 대해 일본의 교오도(京都)대학 대학원 모 교수는 “조선왕조에서 성균관이라는 국립중앙유교대학의 엘리트들은 왕에게 직소(直疏)할 일이 있으면 광화문에 모여 데모를 해 잘못한 왕을 바로잡았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도 살아있다.”고 하였다. 또한 “일본의 유교는 혁명사상이 없는데 비해 한국의 유교 전통은 윗사람이 도덕성이 없을 때 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정치개혁, 즉 ‘경장은 혁명과 수성보다도 더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시대상황에 알 맞는 개혁이 없다면 그 조직이나 나아가...
[학술논문]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유람 중의 활동
...시는 대개 그 소재가 중복되었으며, 사대부들이 많이 찾은 명승지나 사찰이 주요한 소재였다. 사대부들은 유람 중에도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대부들은 많이 읽은 책은 『심경』, 『근사록』 등으로, 유람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인 마음공부에 도움에 되는 것들이었다. 사대부들은 유람 중에 동행한 친지, 산에서 만난 승려와 많은 토론을 하였는데, 그 주제는 유교와 불교, 산의 경치와 역사, 전설과 문화유산 등 다양하였다. 명승지에 자신의 이름이나 시를 쓰는 제명은 조선시대에 매우 성행하였다. 사대부의 제명은 시 쓰기와 함께 선인의 유람관행을 본받는다는 의미가 강하였으나,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사대부들도 적지 않았다. 제명은 바위는 물론, 건물․나무 등 다양한 곳에 이루어졌으며, 승려와 노복이 글자를 새기는...
[학술논문] 북한 소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타난 북한의 언어문화 연구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과 교과서에서 기술된 언어를 함께 분석하였고 그 결과 세 가지 측면에서 북한의 언어문화를 고찰하였다. 첫째, 김일성과 김정일을 대상으로, 이들을 맹목적으로 높이고 칭송하기 위해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김일성 일가를 다른 언중과 구별 짓고 특화시키는 차별적 언어문화가 매우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다. 둘째, 적대 세력에 대해서는 언어로서 적개심을 표출하는 것을 긍정하는 언어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김일성 일가 또한 이러한 언어문화 형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셋째, 가정에서의 언어문화는 유교적 전통과 긴밀히 상호작용하고 있었으며, 학교에서의 언어문화와 관련해서는 교사와 학생, 학생 상호간의 존중과 예의, 성별 화법 차이가 형성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