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47년 남북 문단과 이념적 지형도의 형성
...『백민』을 비교함으로써 1948년 이후 고정화된 남과 북의 문단 담론이 어떻게 그와 같은 극단의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들 매체는 1947년에 들어서면서부터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데 이는 당대의 사회가 남한과 북한이라는 공간에 이념적 정체성을 부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문화전선』이 고상한 리얼리즘을 구체화 하면서 ‘응향’ 사건에 대한 결정을 공시하던 순간, 남한의 『백민』은 이들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정치위주의 문학론을 적극적으로 비판해 나간다. 문단의 통합 논리를 주도하던 『문학』은 투쟁적인 입장으로 그 태도를 바꾸고 결국 미군정과의 대립 속에서 자체의 논리를 잃게 된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당대의 사회가 1947년을 기점으로 미국과 소련을...
[학술논문] 해방기의 지역문학론- 파성 설창수를 중심으로
이 논문은 해방기 지역문학의 성격을 설창수의 지역문학론을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해방기 지역문학은 주장과 결과가 불일치하는 역설적 성격을 보여준다. 좌익이나 북한의 경우 ‘지방문화’와 문학의 확산을 강조했지만 이는 오히려 지역에 대한 중앙의 통제 강화로 이어졌다. 『응향』 사건이 이의 대표적 경우라 할 수 있다. 우익의 경우는 지역문학에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 점에서 지역의 자생적이고 개성적인 문학이 가능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해방기의 좌익과 우익의 민족문학 담론은 공통적으로 민족이라는 단일하고도 보편적 단위를 전제한 것이었으므로 지역문학이라는 특수성의 문제는 사실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역’문학이라는 특성상 ‘지역문학’에...
[학술논문] 초기 북한문학 창작방법론의 역사적 기원 고찰 - 『문화전선』 제1~5집에 나타난 ‘고상한’의 수용과 정착 과정을 중심으로 -
...북조선문학예술총연맹의 기관지 『문화전선』 제1~5집을 통해 ‘고상한 사실주의’의 수식어인 ‘고상한’의 활용형을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고찰하였다. 이 시기를 다룬 기존의 연구들이 ‘고상한 사실주의’를 하나의 확정된 담론으로 규정하면서 미시적인 고찰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1946~47년의 양상을 『응향』 사건이나 ‘건국사상총동원운동’, 김일성의 1947년 신년사 등을 중심으로 북한문학의 도식화를 설명해왔다. 하지만 북한문학의 출발선상에서 제출된 기관지 『문화전선』의 번역문들을 중심으로 고찰해본 결과 1946년 이전에도 이미 북한 사회에서는 ‘고상한 사상과 예술’을 강조하는 소련문화의 수입과 활용에 대한 논의가...
[학술논문] 박홍근의 월남 동기와 월남 직후 동시의 주체 형성
...통해서 등단하였는데, 이 시기 북한은 ‘평양예술문화협회’와 ‘프로예맹’이 통합하여 ‘북조선예술총연맹’으로 확대(1946. 3. 25.)되었고, 곧이어 그 명칭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 개칭(1946. 10. 13.~14.)하였다. 이때 북한은 이른바 ‘『응향』 사건’(1946. 12.)을 통해서 북한문학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공고히 해 나갔다. 한편 아동문학에서도 ‘아동문화사 사건’(1947) 등을 통해서 사상성을 검증하였다. 이런 와중에 등단을 한 박홍근은 그의 문학관이 이런 일련의 사태를 부정하든 긍정하든 영향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은 여기서 출발하여 박홍근의 월남...
[학술논문] 당(黨)문학의 기원 - ‘당-국가(party-state) 체제’와 ‘응향(凝香) 사건’
...체제’에서 발생한 ‘응향 사건’을 중심으로 해방기 ‘김창만-안막 체제’의 문예정책의 향방을 검토한 것이며, 남한의 조선문학가동맹이 만들어낸 역사의 재구성에 대한 점검이며, 연안계가 만든 당문학의 기원에 대한 하나의 탐구이기도 하다. 북조선의 ‘당-국가 체제’에서 북조선로동당의 1946년 12월 회의와 1947년 3월 회의 및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1946년 12월 회의에 이어 1947년 1월 회의는 해방기 문예정책의 중요한 변곡의 지점이다. 1946년 12월에 일어난 ‘응향 사건’은 북조선식 사상개조운동 속에서 발생한 것이며, 연안계의 마오주의를 원용한 대중화론과 연계된 것이다. ‘응향 사건’에 대한 194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