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儀禮, 記念物, 그리고 個人墓의 발전
...취락을 모델로 등장하는 과정, 규모와 형태를 오래 유지하도록 석재를 사용하게 되는 과정 등은 동북아의 기념물적 분묘가 발전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참고가된다. 동북아 일원에서 農耕社會의 정착이 전체 경관으로 확대되어가는시점에 遼東과 西北韓지역에서 卓子式지석묘가 등장하고 이와 아울러각 지역에서는 취락 주변에 개인의 분묘가 축조된다. 이와 같은 初期形의 墳墓와 卓子式支石墓라는 기념물적인 구조물은 서로의 요소가 결합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巨石墓로 발전한다. 동북아 초기 농업사회에 등장하는 기념물 요소로는 環濠, 支石墓, 周溝墓, 石築祭儀遺構, 그리고 大型木造建物등으로 이 유구들이 지닌 제반 건축요소들은 경우에 따라 서로 복합되기도 하고 어느 하나의 성격을가진 유구가 다른 의미와 기능을 지닌 구조물로 대체되기도 했다...
[학술논문]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신학과 의례
This paper put its purpose on the critical review to the relation of theology and ritual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PROK) as a protestant denomination in Korea. PROK was established in 1953 as a new denomination of Presbyterian Church with ‘Missio Dei’ theology. That had meant PROK made clear its identity as a church of the participation in the social
[학술논문] 코리언의 혼례 전통 계승과 현대적 변용
...전통적 혼례로부터 공통적으로 계승되는 절차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통해 코리언들이 혼례에서 놓치지 않는 본질적인 절차와 의미를 추출하여 문화 통합의 장치로 활용하고자 한다. 생애의례는 민족의 고유한 전통과 의식이 투영되어 격식으로 진행되므로 민족의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고, 이러한 정체성의 공유는 분단을 넘어 통합으로 가는 하나의 방편일 수 있다. 특히 생애의례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혼례 절차와 의미에 대한 통합 모델은 문화 통합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각 지역 혼례의 현재적 양상을 비교해 보면, 남한은 서구지향과 상업주의 논리에 따라 변화한 예식 절차로 혼인식의 진정한 의미를 놓쳐버린 측면이 강하며, 북한은 경제적인 여건과 사회주의 생활방식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간소화된 절차만을 유지하고 있다...
[학술논문] 渤海 기와 硏究의 推移와 몇 가지 斷想
...종합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우선 남·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발해 기와의 연구 성과를 시기별로 검토해 보았으며, 앞으로의본격적인 연구를 위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였다. 발해 기와의 연구는 대략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기(1930~40년대)는 일본인에 의해 연구가 주도되어 기와의 문양과 형태 등을 검토하였으며, 연구 토대가 마련되어 학사적 의미를 둘 수 있는 시기이다. 2기(1950~70년대)는 조·중공동발굴대에 의해 중국 동북지역의 광범위한 발굴이 이루어진 시기로평기와에 시문된 압인, 문자 등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3기(1980~90년대)는 연구가 급증하였으며 북한과 중국, 남한과 러시아의 공동조사 성과가 가시화된 시기이다. 특히 남 북한에서는 와당 분석을...
[학술논문] 남북한 춘향전 영화를 통해 본 <춘향전>의 국민문학적 의미
...제작된 춘향전 영화들 역시 등장인물들의 형상화와 장면화를 일부 사회주의적 이념에 맞게 수정, 변형시켰지만 기본적으로 식민지 시기부터 제작된 춘향전 영화들의 익숙한 장면화를 반복했다. 결과적으로 근대화 이후 혁신과 변화를 추구해왔던 한국 사회에서, 춘향전 영화들은 전통에 대한 페티시즘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게 정형화되어 제작되어 왔다. 즉 해방 후 남북한 춘향전 영화들은 예술 작품으로서의 혁신과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추구했는데 이러한 특징은 춘향전 영화의 특별한 관객성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그 만큼 춘향전 영화들은 매우 독특한 관객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관객들에게 춘향전 영화의 관람은 안정적인 소속감 혹은 공동체적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는 의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