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재일조선인 ‘북송문제’와 일본인의 ‘귀국협력’ - ‘일조우호운동’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일본인들의 귀국협력운동이 안보투쟁을 매개로 한 일본 혁신운동의 연장이자, 북한이라는 요소와 밀접히 연관된 국제적인 연대운동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통일전선운동으로서 귀국협력운동은 북한의 대일정책(접근), 또는 통일전선 전술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리고 북한과 일본혁신운동 간의 연대는 일조협회를 중심으로 한 일본 혁신계의 일조우호운동이라는 형태로 존재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귀국협력운동은 북일 ‘인민연대’를 고양시켰다. 일조협회 귀국협력운동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조직력을 크게 확장시켰고, 귀국협정 체결 후에는 일조우호운동에 있어서도 큰 성과를 획득했다. 그리고 북일 ‘인민연대’의 성과는 일본혁신진영의 한일회담 반대투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학술논문] 일조협회'의 결성과 '일조우호운동'의 태동
...일본인 간의 특별한 경험, 일본국내에 형성되어 있던 재일조선인 사회와 재일조선인 운동, 그리고 재일조선인 운동과 일본공산당간의 특수 관계, 나아가 평화옹호운동진영에 있어 중소 양국과 ‘조선’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일조협회가 독자적인 활동을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이 종전을 맞이하면서 부터이다. 이는 평화공존론을 매개로 하는 국제공산주의 운동노선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북한은 6.25전쟁의 종전과 동시에 아시아 태평양지역 평화연락위원회를 통해 일본에 대표단 파견을 요청했다. 이에 호응해, 일조협회를 거점으로 한 정전 축하사절단 파견 운동이 전개되면서 일조우호운동이 본격적으로 개시되게 되었다. 이로서 냉전기 북일관계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한다.
[학술논문] 일조우호 운동과 한일회담 반대운동 ―일본조선연구소의 식민지 지배책임론에 대한 고찰
본고는 일본조선연구소의 식민지지배책임론을 중심으로 한일회담 반대운동과 일조우호운동의 상관관계를 고찰하였다. 일본조선연구소는 한일조약 비준후에 일본정부가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 탄압의 일환으로 시도했던 외국인학교제도 설립 반대 운동의 논리로서 일본인의 가해성에 대한 반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외국인학교제도 설립 반대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일본조선연구소가 전개한 이러한 논리는, 일본조선연구소가 한일회담 반대 운동을 수행하면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일본의 식민주의에 대한 철저한 투쟁을 통해 조선에 대한 차별의식을 극복하지 않으면 한일회담 반대 운동은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논리의 계승이자 발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종래에는 당파적 대립으로 간주되어 온 일본조선연구소의 리더 데라오 고로와 공산당 간의 갈등의 근저에...
[학술논문] 『Song of Ariran』(1941)의 일본어 번역과 해석 네트워크의 변천
...일본의 예속상태에 대한 위기의식 및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관계정립의 필요성 속에서 번역되고 읽혔다. 특히 북한에서 서술된 조선민족해방투쟁사의 적극적 참조와 ‘피압박민족’의 연대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일본 지식인들의 식민주의 성찰과 조선 해방운동에 대한 연대 논의 속에 이 텍스트가 배치된 점이 주목된다. 1960년대에는 ‘일조우호운동’ 담론의 자장 속에서 전후 일본의 비판적 조선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아리랑의 노래』를 읽고자 하는 움직임이 주목된다. 1950-60년대 일본에서 『아리랑의 노래』는 전후 일본에서 조선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역사적 관점을 확장하고 사회운동과 결합하는 형태로 전개된 비판적 조선학의 흐름과 호응하는 포스트콜로니얼 텍스트로 자리잡아 갔다....
[학술논문] ‘반핵․평화를 위한 조선피폭자협회’의 결성과 북일 원폭피해자의 교류․지원활동 연구
...북한피폭자의 관계라는 요인을 보다 적극 개입시켜, 그동안 논의가 부족했던 북한피폭자 단체인 ‘반핵․평화를 위한 조선피폭자협회’의 결성과 북한원폭피해자의 실태 그리고 북일 피폭자간 교류․지원활동을 살펴보는데 있다. 이를 통해 과거 전쟁 평가에 대한 공적인 검증이나 설명을 회피해온 일본의 역사문제가 북한피폭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북한피폭자 실태를 통해 구체적으로 검증한다. 또한 북일 피폭자 간의 교류․지원활동은 북한과 일본의 사회운동을 매개한 ‘일조우호운동’의 한 방식이었는데 그 역사를 ‘원수금’, ‘재조피폭자 지원연락회’, ‘히로시마현 의사회’의 북한피폭자와의 교류와 지원활동을 중심으로 총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