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1947년까지 이 항목에 대한 답신을 받았었는데, 여기에 국호와 국체(國體) 문제도 들어 있었다.
국호에 한정하여 답신을 살펴보면, 우파인 임정수립대책위원회는 ‘대한민국’, 좌파인 민족주의민족전선은 ‘조선인민공화국’, 중도파인 시국대책협의회는 ‘고려공화국’, 미군정의 입법기관인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대한민국’을 제시했었다.
여기서 보듯 국체는 모두 ‘공화국’을 지향하고 있었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군주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이미 그 수명을 다했지만, 어찌 되었건 해방 공간의 정부 수립 과정에서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제 역사의 유물이 되었다.
[사회/문화]
...주권자로서의 ‘격의 동등’, ‘법 앞에 평등’이라는 의미에서 평등의 원칙은 수호하되, 등가참여의 고전적 민주참여 제도는 시대환경의 변화에 따라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다른 영역에서는 전문가 선발 제도가 있는데 유독 한국의 입법기관에는 전문성 검증 제도가 없다. 일정 수준의 전문 지식을 갖추지 않은 입법의원이 국정운영에서 포퓰리즘을 추구할 경우 ‘민주주의를 가장한 전제주의 정부’ 출현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고전적 등가참여 제도와 ‘절대 다수주의'를 악용하여 평등을 가장한 ‘민의왜곡’을 만연케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리고 21세기적 시대환경에서...
[학술논문] 芹村 白寬洙의 정치 이념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실의 과오를 시인·사과하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씻김굿을 통하여 용서의 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동경 2·8독립선언의 주역이 친일 논쟁에 휘말리고 애국지사의 반열에서 제외되는 것은 당사자와 국민 모두에게 비극적인 사실이다. 군정기간에 그가 입법의원 임시의장의 자격으로 남한 단독정부의 결의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분단의 책임 문제로 확대되어 이 사회를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잣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1948년의 상황에서 단정 문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으며, 백관수 한 개인의 결심으로 어찌 되거나 바뀔 상황이 아니었다. 백관수를 비롯한...
[학술논문] 근현대 한국 연호의 변화 양상과 논쟁: 한말,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헌국회의 연호 논쟁
...1910년 일제의 강제병합 이후, 국가를 상실한 한국인은 ‘한민족’을 상징하는 연호로서 단군 기원을 사용했다. 그런데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단군 기원이 아닌 대한민국 기원을 채택했다. 한민족의 ‘민족’보다 민국이라는 ‘정체’를 앞세운 것이다. 해방 후에도 연호의 혼란은 계속되었다. 과도입법의원과 신문은 단기와 서기, 일상은 단기와 대한제국의 연호를 병기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에도 연호의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는 1919년부터 기산한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했다. 민국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임시정부의 민주공화국 수립 정신을 계승하고, 동시에 북한의 공산 독재체제를 비판하고자 했다. 그런데 다수의 제헌의원들은 단기 연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