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한반도의 분단체제와 그 극복
...‘체제’라는 사실을 드러낸다(2장). 분단체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냉전체제와 그 해체의 역사를 성찰할 것이다(3장). 마지막으로 분단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한다(4장).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라는 세계체제의 하부구조로 종속되어 있고, 남북 정치 경제권력자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그러므로 남북 민중들은 분단체제의 현실을 자각하는 한편 미래의 통일민족공동체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세워, 대내적으로는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를 추구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세계의 민중들과 함께 왜곡된 세계체제를 변혁할 이념을 창안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세계의 평화, 평등 그리고 번영을 이룰 세계체제의 새로운 비전이 지구상의 모순이 가장 첨예한 한반도의 분단체제에서부터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술논문] 제국에 맞서기 : 니시다와 만해
...이것들로써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섰다. 니시다는 후기에 공개적으로 제국주의를 비판했던 적도 있다고 하지만, 동아공영권이나 “세계는 한 집”과 같은 일본 중심의 슬로건 자체가 만해와 같은 조선인에게는 불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그리고 국체의 자기한정이 조선인이나 중국인과 같은 비일본인에게는 치명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 전통 안에 있으면서 마음/의식의 능력에 대해 깊이 사고했다는 점에서는 니시다와 만해는 서로 통하지만, 제국의 중심과 식민지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해에 따르면, 자유와 생명이라는 善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선은 정치 제도에서 부패를 몰아냈어야 했고, 자유와 생명을 박탈당하기 전에...
[학술논문] 코리언의 민족어 현실과 통합의 미래 -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넘어 -
...어휘적 간섭이 주로 발생하고 있었다. 만일 한반도와 거주 국가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코리언은 언어간섭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중심세대인 2~5세대는 모어와 민족정체성이 일치되는 코리언 제1세대와 달리 이들은 민족정체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민족어를 습득하게 되는 경로를 밟고 있었다. 민족적 자각이 생기면서 민족어를 배우고자 하고, 민족어를 통해 코리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코리언의 민족어 소통과 통합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첫째, 민족어를 단일한 하나의 언어로 만든다는 “민족어 통일”이라는 관점을 다양성과 상호공존을 전제로 하는 “민족어 통합”이라는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한국의 규범을 강요하지...
[학술논문] 독재정권 몰락의 급작성과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이론적 검토
...이루어진다. 우연한 계기에 일정 수 이상의 임계 대중의 선택은 다른 참여자의 선택을 유도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 더 많은 이의 참여로 이어진다. 이 되먹임의 결과 시민 대다수의 참여와 쏠림으로 독재가 무너진다. 이 모든 과정이 마무리 될 때까지 혁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북한 정권이 “우리식 사회주의”의 고수 대신 새로운 발전 목표를 설정할 경우 이는 위험 감수형 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개혁의 진퇴 속에서 북한 주민은 빈번하게 손실을 경험하면서 정권에 대해 보다 분명한 적대감을 지닐 것이며 엘리트의 갈등이 노골화될 소지가 크다. 이 상태에서 자신의 혁명적 의지를 새롭게 자각한 임계 대중이 출현하고 쏠림의 상호작용이 발생하면서 북한의 급변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학술논문] 기원전 2세기대 서북한 고고 자료와 위만조선
본고는 위만조선의 재인식과 위만조선 고고학의 성립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위만조선 고고자료의 공백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위만조선은 조선 후기 正統論的 역사 체계 하에서는 왕위를 찬탈한 僭國이자 簒賊의 존재였다. 하지만 개화기에 들어 근대 국민국가와 연계된 민족이라는 실체가 서서히 자각되면서 위만조선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林泰輔의 『朝鮮史』에서 비롯된 식민사학의 세례 이후, 1907년 白鳥庫吉은 위만조선을 식민지로 파악하였는데, 당시 무차별적으로 도입된 ‘식민지’ 개념은 이후 식민사학의 근간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위만조선 고고학은 그 자체 내지 고조선 문화의 견지에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낙랑군 사회의 토대이자 출발점으로 이해된 것이었다. 당시 非漢式 문화인 세형동검문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