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여성학자 정희진은 “이 책은 남성성이 실체가 아니라 규범임을 증명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군사력 등 공사 영역에 걸쳐 세계 최고의 무장 국가인 한국사회의 필독서”라며 강력추천했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은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다. 충격적인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이라고 격찬했다. 『전쟁과 사회』 『대한민국은 왜?』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해온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저자와 만나 대담할 때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쩌면 죄책 없는 일본보다 죄책 없는 한국이 훨씬 더 중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소감을 토로했다.
[정치/군사]
지난 2000년에 출간된 <전쟁과 사회>의 개정판. ‘한국전쟁’의 지배적 해석에 관한 최초의 비판서로, 국가의 공식적 기억이 아닌 남북한 민중의 체험을 바탕으로 바라본 한국전쟁에 대해 서술했으며, 전투가 아닌 정치 행위로서의 전쟁, 근대국가의 형성과 유지에 필수적이었던 원초적 국가 폭력으로서의 전쟁, 민중들의 적응 양태 등을 포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한국전쟁의 경험과 기억을 보편적인 언어로 해석했다.
출간 이후 주요 매체 및 기관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되었고, 2005년에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가 뽑은 ‘한국의 책 100’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독일어와 일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이번 한국어 개정판 출간과 동시에 미국에서...
[학술논문] 전쟁사회와 북한의 냉전 인식 : 신천박물관을 통한 계급교양
북한사회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인을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고, 군대를 거점으로 정치경제가 움직이는 체제이다. 이는 전쟁이 사회제도의 일부로 편입되어 인민과 사회와 국가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조직이 된다. 그리고 군을 중심으로 체계화된 사회는 경제와 사회영역이 무력에 종속된 병영국가로 나타나고, 이것은 선군정치가 등장하는 데 매우 용이한 배경이 되었다. 1958년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주민피해로부터 모든 피해의 상징이자 반미인식을 고취하는 상징으로서 신천박물관을 건립했으며, 60여 년 동안 지속된 전쟁공포와 핵무기 위협은 이들의 냉전 인식을 강화시켰다. 북한 지도부는 이곳을 인민의 계급교양 거점으로 삼아 피해의식과 전쟁기억을 전승하고, 반미라고 하는 실천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기초이자...
[학술논문] 베트남전쟁 시기 북한의 대외정책
...인민”과 “미제”의 전쟁이 아니었다. 북한에게 베트남전쟁은 궁극적으로는 북한 자신에게 가해질 안보위협을 미연에 막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야만 했던 전쟁이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중·소 분쟁에 적극 개입하며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을 주장하던 북한은 1960년대 중반 들어 베트남전쟁이 과거 한국전쟁처럼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맞대결 성격을 띠게 되자 사회주의 진영의 ‘반제공동투쟁’을 선도적으로 주장하고 전투병 파병에도 솔선수범했다. 하지만 북한의 기대나 바람과는 달리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은 갈수록 심화됐다. 반대로 일본 군국주의는 완전히 부활하자 1970년대 들어서 북한은 사회주의 진영의 반제공동투쟁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낮추고...
[학위논문] 한국전쟁기에 중국어로 번역된 북한문학 연구
...모습으로 나누어 각각 유격대 여성 인민군 노동자 농민 혁명적인 모성의 소유자로 그려진 어머니의 형상화와 구분하여 따로 분석하기로 한다.한국전쟁기 중국어 번역을 통한 북한 문학과 중국 문학의 교류 양상을 살필 것이다. 그 동안 국가 간의 장벽 언어 간의 장벽으로 한 국문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들을 소개하고 특히 작품이 중국어로 번역하여 출판된 한국전쟁기의 사회상황과 문단상황 등 작품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에 대해 간단히 고찰해볼 것이다. 이들 작품을 통해서 식민지 시기 한국문학과 초창기 북한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 북한문학을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한국전쟁기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 심화시키고 다가올 통일시기를 대비하고자 한다. 한국전쟁기에 중국어로 번역된 북한의 작품들에 대한...
[학술논문] 1950년대 북한의 인구 이동과 국가의 대응
전쟁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은 북한 사회 전반에 변화를 초래하였다. 변화의 한 양상은 '이동'이었다. 전쟁기 폭격과 전선 변화로 인한 인민들의 피난과 이주는 정부의 통제 대상이었다. 전시기 인구이동 통제는 정전협정 이후에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동은 '통제'의 대상일 뿐;제한된 것은 아니었다. 북한의 강력한 이동 통제는 1960년대 후반에야 발견된다. 그 이전까지 북한 인민들의 이동 양상은 체제가 정해준 '규칙'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잦은 이직으로 생산 현장의 관리자들을 괴롭혔고;관리자들은 노동력 과다 고용으로 그에 대처하고자 하였다. 노동자들의 이직에는 불안정한 배급제 문제도 있었다. 또한 1950년대 공업 복구로 인한 농촌 인구의 도시 이동에 정부는 제한을...
[학술논문] 1950년대 북한의 인구 이동과 국가의 대응
전쟁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은 북한 사회 전반에 변화를 초래하였다. 변화의 한 양상은 '이동'이었다. 전쟁기 폭격과 전선 변화로 인한 인민들의 피난과 이주는 정부의 통제 대상이었다. 전시기 인구이동 통제는 정전협정 이후에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동은 '통제'의 대상일 뿐, 제한된 것은 아니었다. 북한의 강력한 이동 통제는 1960년대 후반에야 발견된다. 그 이전까지 북한 인민들의 이동 양상은 체제가 정해준 '규칙'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잦은 이직으로 생산 현장의 관리자들을 괴롭혔고, 관리자들은 노동력 과다 고용으로 그에 대처하고자 하였다. 노동자들의 이직에는 불안정한 배급제 문제도 있었다. 또한 1950년대 공업 복구로 인한 농촌 인구의 도시 이동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