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해방 직후 朝鮮人民共和國의 國 문제- 대중 활동과 國 의지를 중심으로 -
해방 직후 朝鮮人民共和國은 國으로서의 대중 활동을 강화하였다. 실제로 朝鮮人民共和國에 의해 발표된 조선 내 일본인 재산에 대한 규정, 3․7제 소작료를 기본으로 한 토지 시정 방침, 그리고 10월 중순 이후 계속된 이들의 경제 정책, 생활 대책 등은 모두 국가 수준의 정책 발표들로서, 당시 대중들의 관심에 정확히 부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한편, 이때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전국농민조합총연맹, 전국청년단체총동맹, 전국부녀총동맹, 조선문학가동맹 등 많은 조직들도 朝鮮人民共和國 지지를 공식화하였는데, 이러한 대중적 움직임은 미군정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편, 본고는 지방 차원에서 朝鮮人民共和國의 國 사수 의지가 지방 인민위원회의 실제적 國 관념에서 나왔다고 보았다. 朝鮮人民共和國의 國이 그만큼 대중적으로...
[학술논문] (구)동서독의 법적 지위와 사법공조 再論 - 남북한의 법적 지위 규명 및 통일한국의 이론적 토대 구축을 위해 -
전체로서의 한국의 계속성과 관련하여 불계속성이론과 계속성이론의 의견 대립이 존재한다. 불계속성이론은 전체로서의 한국이 1948년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의 성립으로 소멸되었다는 견해이다. 이는 구소련과 동구권국가에서 주장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김충구, 앞의 논문, 304면 참조. 반면에 계속성이론은 우리나라에서 당연하듯 주장되고 있으나, 앞의 독일사례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국가의 3요소가 상실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되었다는 구체적인 논의는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제사회에 전체로서의 한국의 계속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상의 국가 3요소가 특정시기, 예컨대 일제강점기, 미소점령기, 남북한 정부출범 등을 기점으로 검토해야하고 이를 통하여 양적으로 제한된 행위능력을 갖는 자생적 국제법적 주체로서의 지위를 보유하고...
[학술논문] 한국전쟁기 유항림의 「진두평」의 장르에 관한 논쟁 -소설이냐? 전투 실기냐?
1951년 8월 유항림은 “조선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진두평에 대한 소설 「진두평」을 발표하였다. 1952년 초 「진두평」에 대해서 안함광은 전투 실기에 가깝다고 평가하였다. 반면에, 이원조는 공화국 영웅을 잘 형상화한 소설로 평가했다. 7월 열린 문예총 연구회는, 이태준과 김남천의 주도로 「진두평」이 기록성이 강한 소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1952년 9월 초 김일성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으로부터 홀대를 받고 10월에는 한국전쟁 휴전 협상이 무기한 연기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11월 박헌영은 1925년 자신이 수립한 조선공산당이 조선로동당의 출발이라고 주장하며 김일성에게 도전하였다. 이때부터 「진두평」의 장르 문제는 남로당 계열 문학자의 반혁명 음모에 관한 문제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