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해방기 <<응향>>사건 연구-자기비판과 검열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 글은 해방기에 있어서 ‘자기비판’ 문제와 ‘검열’ 문제를 검토함으로써 『응향』사건을 새롭게 조명하고, 월남문인으로서 구상시인이 남한 문단에서 정착해가는 토대로서 『응향』사건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지하다시피 『응향』사건은 해방 이후 가장 많이 알려진 필화사건으로 남북한 문학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다. 아울러 월남문인의 삶을 조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전형적이고 극적인 면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응향』사건이 기존 논의에서 많이 언급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지니고 있는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응향』이라는 시집을 현재 확인할 수 없다는 것, 그에 따라 해방 이후 월남한 구상과 강홍운의 기억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다는 것
[학술논문] 삐라와 문학의 공통감각 - 한국전쟁기 북한 삐라를 중심으로-
...과제인 미군삐라와 북한삐라의 대조를 통해 그 종류와 특성 및 미군삐라에 대한 북한의 대응 방식을 살피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따라서 한국전쟁 당시 살포된 감정선동물인 삐라의 효과와 북한 문학과 삐라의 영향관계 그리고 삐라가 전유, 사유, 왜곡되는 과정을 문학작품 및 기타 문건을 토대로 검토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 비해 삐라 제작에 있어 비전문성이 강했다. 이글에서는 북한의 삐라 제작자들이 비전문적인 취약성을 극복하기위해 문학작품을 참고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살펴보았다. 당시 북한의 문학은 현장성을 종군작가로 참가한 작가들의 르포르타주나 취재를 통해 전달받아 작품으로 재생산되었고 다시 도시나 전선에 보급되는 구조였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생산된 담론이 유통되면서 문학과 삐라는 공통감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학술논문] 한⋅중 6.25전쟁 전선소설에 드러난 ‘애정(愛情)의 정치적 서사’ 비교연구
한국전쟁은 당시 한중 양국의 문단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즉, 한국에서종군작가단의 결성과 중국의 ‘입조’(북한에 들어감) 작가단의 형성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양국의 종군작가단은 전쟁의 승리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는 도구로서 큰 힘을 발휘하였다. 이른바 전쟁기의 문학은 강한 정치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선소설에서 인간의 욕망을 대표하는 애정이라는 감정이 정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고 전선소설 속에 있는 문학의 자율성을 탐지하는 것이본 논문의 목적이다. 본고에서 소개한 애정과 정치의 관계는 주로 ‘개인적 애정과 조국애의 양보’ 관계와 ‘개인적 애정과 조국애의 합일적 관계’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해당 작품으로는 정비석의...
[학술논문] 월남시인의 삶의 두 방향 - 박남수와 양명문의 경우
이 논문은 해방전쟁기 월남 시인들의 삶과 문학을 통하여 전쟁과 이데올로기가 이들의 삶과 시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대상으로 남과 북 양쪽의 이데올로기를 모두 겪은 시인으로서 박남수와 양명문의 경우를 중점으로 살펴보았다. 이 문제는 북에서는 ‘당의 문학’의 수용, 남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수용이라는 그 내밀하고도 민감한 문제에 접근하는 일이기도 하다. 월남 시인으로서 박남수와 양명문을 대상으로 삼은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둘 다 평안도 출신으로서 북한에서 이미 시인이었고, 북의 체재를 옹호하는 시를 발표했다는 점. 둘째, 월남시인으로서 남한 사회에서의 이들의 삶의 양태가 극단적이라는 점. 셋째, 전쟁기 양명문이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
[학술논문] 전향자로서 자기 증명과 휴머니즘- 해방 이후 박영준의 글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학적 방향 탐색하는데, 백철의 “신윤리”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영준은 이후 인간적 고뇌와 관계를 고민하는 휴머니즘적 작품을 발표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발발 당시 북한 괴뢰군의 포로로 잡혀 노역했던 경험 때문에 발생한 ‘자기 증명’이다. 이는 「노예의 노동생활」에서 보여준 반공 수사를 통해 진행된다. 이후 종군작가단에서 근무하게 되며, 종군작가단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다. 이 당시 《전선문학》의 ‘선전’ 활동으로 인해 적극적인 휴머니즘을 추구하진 못하지만, 「용초도근해」를 통해 소박한 휴머니즘의 성취를 이룬다. 이처럼 박영준은 해방 이후 일관되게 인간의 고뇌를 담은 휴머니즘적 방법론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