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중-소 분쟁 초기 중국의 대북한 원조 - 1956〜1960년을 중심으로
...1956년 중공업 우선의 5개년 경제계획을 수립하고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에서 1956년 발생한 '8월 종파사건'시 자국의 권유를 이행하지 않은 북한에게 원조 관련하여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중국의 태도는 1957년 중반기부터 바뀌기 시작하였다. 중-소 양국 공산당 사이에서 이념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중-소의 관계변화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상승시켰고, 중국과 소련은 북한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경쟁을 하였다. 중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원조에 대해서는 자국보다도 우선적이었다. 결국 중국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58년을 기준으로 북한에서 전 분야에 걸쳐 소련과 대등한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북한으로 하여금 소련보다는 중국의...
[학술논문] 박정희 정부의 대중·소 외교정책 - 대통령 기록물 분석을 중심으로
...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소련과의 교류를 강화시킬 조건을 형성시켰다. 중·소 양국 역시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이 시기 대중·소 외교는 그 접근 방식을 철저한 비밀주의에 입각하여 진행하였고, 그 성과도 크지 않았지만 1980년대 무역 거래 증대와 뒤이은 1990년대 초 관계정상화에 밑거름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
[학술논문] 베트남전쟁 시기 북한의 대외정책
...한·일 관계정상화로 미국의 오랜 숙원이었던 한·미·일 삼각동맹이 완성됐다. 반면에 사회주의 진영은 중·소 분쟁이 본격화되면서 분열과 갈등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한·미·일 삼각동맹에 맞서는데 점점 더 많은 자원과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이 와중에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마저 승리한다면 북한의 안보불안은 한층 더 커지게 된다. 따라서 북한에게 베트남전쟁은 단순히 “싸우는 베트남 인민”과 “미제”의 전쟁이 아니었다. 북한에게 베트남전쟁은 궁극적으로는 북한 자신에게 가해질 안보위협을 미연에 막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야만 했던 전쟁이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중·소...
[학술논문] 냉전시기 중·소가 지원한 북한 석유화학콤비나트와 송유관에 대한 연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의 주요 품목으로 대북 석유 제재를 둘러싸고 미중이 갈등이 격화되면서, 국제사회는 북한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냉전 시기 단동-신의주 국경의 봉화화학공장과 중조우의관(송유관), 북소 국경의 라진 지역의 승리화학공장에 대하여 검토하도록 한다. 북한지역의 석유화학산업은 태평양시기 미국의 대일 석유금수조치에 대항하여 일제가 석유저장설비와 석탄액화설비가 건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냉전시기 중국과 소련이 전후 북한의 재건을 위한 원조의하여 석유화학설비가 재건되었고, 고난의 행군 시기 산업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와 설비증설이 이루지지 않았고, 승리화학은 1999년 생산이 중단되었다. 따라서 냉전시기 북한의 석유화학설비의 수준을
[학술논문] 북·중 관계의 내쉬균형 적용과 전략적 소다자주의
... 변화와 대중정책을 ‘내쉬균형(Nash Equilibrium)’과 소다자주의 외교정책을 기반으로 분석하여 북한의 대중국 정책 전망을 도출하여 역내 국제정세의 정책적 함의점을 찾고자 한다. 또한, 최근 북한이 기존 북중관계를 단절하고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북러협력 관계를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하고자 한다.